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11일 기자들과 만나 당장 자진 사퇴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후계구도를 확정지은 후 물러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어떤 징계조치를 내리느냐에 따라 라 회장의 거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라 회장,후계구도 구축의지

라 회장은 이날 출근길에 신한은행 본점 1층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 3월 주총 때까지) 금융감독당국이 가능한 한 공백 없이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희망"이라고 말했다. 금융실명제법 위반과 관련한 금감원의 중징계 방침에 대해서는 "상세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으며 금감원이 나중에 판단할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소명절차에 임할 뜻을 밝혔다. 그는 앞으로 거취에 대해서는 "조직 안정과 발전을 위해 (금감원을) 설득하면서 입장을 밝히겠다"며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금융권에서는 라 회장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때까지 신한금융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후계구도를 본인의 의도대로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다음 달 4일 제재심의위

당장 금감원 징계수위가 변수다. 금감원은 다음 달 4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라 회장에 대한 징계를 결정한다. 금융감독원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할 경우 라 회장이 내년 3월까지 자리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물론 라 회장이 18일까지인 소명 기간 동안 혐의를 벗을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면 징계수위는 낮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라 회장의 뜻대로 이뤄질 수도 있다.

검찰수사도 변수다. 검찰은 이희건 신한금융 명예회장의 자문료 15억6000만원 중 5억원을 라 회장이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작년에 덮었던 차명계좌 조성에 대해서도 조사하려는 움직임이다. 검찰수사 결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라 회장의 거취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라 회장은 이와 관련, "자문료와 비자금에 대해 신 사장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나와 관계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계속해서 제기되는 의혹

이날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가 의혹이 제기됐다. 신건 의원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검사를 통해 라 회장의 차명계좌가 확인됐다"며 "연계된 가 · 차명계좌가 1000개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라 회장의 차명계좌를 관리한 주체는 라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이백순 신한은행장"이라며 "금융실명법을 정면으로 무시한 라 회장과 이 행장을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이에 대해 "다음 달 예정된 금융감독원의 신한금융에 대한 종합검사 이후 라 회장의 책임을 거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라 회장은 이날 오후 8시 다시 미국 뉴욕으로 출국했다. 투자설명회(IR)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신한금융은 1대 주주인 BNP파리바의 미쉘 페베로 회장이 재면담을 강력히 요청,라 회장이 당초 예정했던 해외 IR 일정을 모두 소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지난 8일 라 회장의 급거 귀국에 따라 불안감이 팽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최근 사태와 관련해 신한금융의 시스템과 펀더멘털 안정성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많이 묻고 있다"고 전했다. 라 회장은 미국 뉴욕,보스턴과 런던 파리 싱가포르 등에서 해외 IR 일정을 마치고 27일 귀국할 예정이다.

정재형/강동균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