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벤처 바람이 다시 불어오나. 수치상으로 벤처업계의 부활조짐이 뚜렷하다. 정책자금의 벤처캐피털 유입이 봇물을 이루면서 전체 투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 감소하던 벤처캐피털 수도 2007년을 바닥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각 벤처캐피털은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올해 3000억원가량을 투자한다. 과거 연간 최대 투자액보다 50%가량 늘어난 액수다. LB인베스트먼트도 올해 1000억원을 투자한다.

벤처캐피털업계는 "과거 벤처투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졌던 벤처펀드 투자가(LP)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과거와 같은 '대박'가능성은 낮아졌지만 10년 안팎의 벤처기업들이 뿌리를 내리면서 벤처산업을 옥죄던 부정적 인식들이 걷히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투자 방식과 대상 10년 전과 딴판

최근 벤처산업 회복세는 벤처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작정 돈을 묻어두고 대박을 노리던 투자관행 대신 어느 정도 기술력이 입증되고 규모를 갖춘 기업에 투자가 집중되는 양상이다. 벤처 붐이 절정을 이루던 2002년에는 벤처캐피털이 3년 미만 신생기업에 54.5%를 투자했다. 7년차 이상 기업 투자 비중은 11.5%였다. 하지만 올해는 3년차 미만 기업 투자비중이 29.1%로 뚝 떨어졌다. 대신 7년차 이상 기업에 가장 많은 40.7%가 투자됐다. 그러다 보니 기술력을 가진 중견기업들에 자금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 대상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 벤처 붐 당시에는 인터넷 등 정보기술(IT) 부문 투자가 압도적이었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제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 비중이 이를 추월했다. 올 상반기까지 제조업에 1721억원,엔터테인먼트에 1659억원이 투자됐다. IT분야는 1531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모바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게임,동영상 등 콘텐츠 산업이 유망 비즈니스로 등장하고 제조업 부문의 환경 관련 산업이 두각을 나타내는 모양새다.


◆부활 본격화까지 해결 과제 산적

벤처 열기가 절정이던 2000년 중기청에 등록된 개인투자자(엔젤)는 2만8000여명,투자액은 5493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1243명,346억원에 그쳤다. 최근 벤처투자 회복세는 민간부문 참여 없이 정책자금과 연기금 등 공공부문이 주도한 결과라는 얘기다. 벤처기업에 대한 민간의 부정적 인식이 아직 걷히지 않은 데다 벤처투자에 대한 정부의 혜택도 예전같지 않다. 당시에는 개인의 벤처투자에 대해 30%를 소득공제해줬다. 하지만 지금은 소득공제율이 10%로 줄었고 그나마 올해를 기점으로 폐지된다. 일반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벤처캐피털에 투자할 경우 얻었던 지급이자 손금불산입,투자손실준비금 손금산입,양도차익 비과세 등의 혜택도 없어졌다.

벤처업계로의 인재 유입도 예전같지 않다. 벤처 붐 당시에는 대기업의 기획,마케팅,영업 전문가들이 대거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벤처기업들이 인재난을 겪으면서 연구 · 개발(R&D) 성과 대비 상용화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다.

김윤권 LB인베스트먼트 이사는"벤처가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완전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민간부문에서 투자 등 추가적인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