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재도약] 자원개발ㆍ금융ㆍ농업까지…'글로벌 영토 확장' 공기업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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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유공사가 이달 초 영국의 석유탐사 기업 다나 페트롤리엄의 적대적 인수 · 합병(M&A)에 성공한 것은 국내 공기업들의 달라진 글로벌 경영 성과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석유공사는 당초 우호적 M&A를 추진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공개매수라는 깜짝 카드를 사용할 만큼 적극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과거 공기업들은 '허울뿐인 글로벌 경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에 나가서 실속 없는 협력 계약을 맺거나 이름만 그럴듯한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민간 기업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해외 시장 개척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특히 실패할 확률이 커 민간 기업이 주저하는 자원 개발 분야에서 톡톡튀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한전 등 전력 공기업 발군
한국전력은 원자력 발전소 수출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은 해외 매출 비중이 1%대에 그치는 전형적인 내수 기업이었다. 그러나 작년 12월 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200억달러 규모의 원전 4기를 수주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터키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등으로 추가 수출이 기대되고 있다. 한전은 최근 '2020년 매출 85조원, 해외 매출 26조원'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지금보다 매출 규모를 2.5배 키우는 동시에 해외 매출 비중도 30%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한전 자회사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엔지니어링 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은 UAE 원전 수주 컨소시엄에 설계 회사로 참여했다. 한국이 향후 추가 원전 수주에 성공할 경우 자연스럽게 설계 파트너로 참여하게 된다. 한국동서발전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서 발전소 4기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3610만달러(약 420억원)로 그리 크지 않지만 국내 발전사 중 최초의 미국 진출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전력설비 정비 업체인 한전KPS는 18년 전부터 해외 각국에서 발전 설비 등에 대한 책임 정비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남아시아와 중동 등에서 2억달러 규모의 사업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전력 정보기술(IT) 기업인 한전KDN은 2020년에 전체 매출 중 3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중동 아시아 등에서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해외 자원 확보 가속도
한국가스공사는 해외 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올 들어서만 △이라크 주바이르와 바드라 지역 유전개발 사업권 계약 △캐나다 셰일 가스전 광구 지분매입 및 공동운영권 계약 △중국 장쑤성 액화천연가스(LNG)터미널 시운전과 기술자문 사업자 선정 등 3건의 대형 자원개발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1983년 국내 천연가스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가스공사는 이제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구매자이자 최대 규모의 LNG플랜트 설비 보유 기업으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유전 개발 사업에서 볼 수 있듯 가스 사업을 넘어 석유 부문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자원 분야에서 '작지만 강한' 기업이다. 전 직원이 370여명에 불과하지만 호주 중국 등 12개국에서 30곳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2+2 전략'을 통해 자원 개발에서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부진한 아프리카와 남미,광종별로는 국내 기업들의 자주개발률이 낮은 우라늄과 동(銅) 자원 확보에 주력한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아프리카 니제르의 테기다 우라늄 사업과 파나마의 코브레 구리 광산 등 유망 사업 확보에 성공한 것은 이런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금융 · 농업 · 수자원 등 다양한 분야 개척
제조업에 비해 취약 부문으로 지목돼 온 금융 부문도 최근 글로벌 경영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금융주선 분야에서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의 선두주자다. 미국의 금융실적 데이터 업체인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산은의 글로벌 PF실적은 2002년부터 작년까지 8년 연속 상위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녹색산업 지원과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에 올해 60조원의 여신을 지원한다는 목표다. 원전 신재생에너지 탄소배출권 확보(CDM) 등의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는 취지다. 수출 잠재력이 큰 중견 · 중소기업 300개를 길러내는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 사업도 가동 중이다.
농업 공기업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한국농어촌공사는 1967년 베트남에 농업기술 전문가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40여년간 24개국에서 85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베트남 야수프 다목적댐 개발(1993년),캄보디아 메콩강 델타지역 홍수조절 계획 수립(1998년),방글라데시 쿠밀라 지역 농촌 종합개발(2008년) 등이 대표적인 해외 사업이다. 올해는 9개 해외 사업을 수주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한국판 카길'을 꿈꾸고 있다. 카길은 '세계 밥상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다국적 농업 기업으로 한 해 매출이 900억달러(약 100조원)에 달한다. 그런 카길을 벤치마킹한다는 것은 국내 농수산 업체들의 해외 수출을 지원하는 소극적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