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엘피다메모리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며 투자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1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카모토 유키오 엘피다메모리 회장은 지난 5일 2010회계연도 영업이익과 매출액이 각각 1000억엔(120억달러)~1200억엔, 6000억엔~6500억엔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존 예상치인 7000억엔과 1600억엔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엘피다는 또 대만 렉스칩에 2기 생산라인 'R2'를 구축하려던 계획도 내년 6월 이후로 연기하고, 올해 1500억엔으로 늘리려던 설비투자 계획도 1150억엔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삼성전자, 하이닉스와는 정반대 행보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올해 삼성전자는 엘피다메모리 보다 10배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도체에 투자키로 했다. 하이닉스도 올해 설비투자 금액을 기존 목표(3조500억)보다 3300억원 늘린다고 지난주에 밝힌 바 있다.

안성호 한화증권 연구원은 "이는 D램 가격하락에 대한 업체별 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선두업체의 경쟁력 차별화가 가속화되는 것으로 한국 메모리업체에 긍정적인 뉴스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외에도 지난 7일 사카모토 회장은 대만 반도체 업체 인수를 추진하다고 발표했다. 그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그것은 대만 반도체 업체들도 마찬가지"라고 위기의식을 나타냈다.

또 그 다음날에는 반도체 생산설비 보강 등을 위해 600억엔(7억2800만달러)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키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소식들이 부정적인 뉴스만 일색이던 국내 IT업계에 '가뭄에 단비'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성혜 현대증권 연구원은 "엘피다메모리가 먼저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설비투자 축소를 밝힌 뒤에 대만 업체인수와 CB 발행 결정을 알렸다"며 "정황상 볼때 엘피다메모리가 구조조정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진 연구원은 "엘피다메모리가 설비투자(Capex)를 늘리기 위해서 CB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개발 지연으로 다른 데서 출구를 찾는 전략을 펴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에게 보다 우호적인 상황이 조성될 것이란 기대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이승우 신영증권 연구원은 "과거 D램 분야에서는 인수합병(M&A)이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엘피다와 대만 업체와의 M&A가 성공해 국내 업체의 시장 점유율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은 적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오히려 엘피다의 최근 행보는 한계 상황에 왔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 업체 투자자들의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