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지난해 5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때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차명계좌 운영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금감원이 사전에 문제를 인지하고도 1년 이상 조사를 미루는 바람에 신한금융 내분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감독당국이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검사에 들어간 것 자체로 감독기관의 권위와 신뢰에 먹칠을 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작년 라 회장 차명계좌 확인

김종창 금감원장은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작년 5월 신한은행 종합검사가 끝난 뒤 (라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는 보고를 담당 국장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그러나 "실명제법은 구체적으로 인적 자료가 있어야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며 "당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검사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검사반장이었던 안종식 금감원 실장은 "지난해 검사에서 차명계좌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차명계좌가 일부 있다는 정황은 있었다"고 밝혔다. 안 실장은 "작년 5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때 신한은행 일부 직원이 라 회장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38억원 거래 명세서를 제출했으며 2007년에 자기앞수표를 발행해 박 전 회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돼 있었는데 정황상 차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확인을 위해 필요한 원본 서류가 검찰에 압수돼 확인할 수 없었으며 신한은행 직원들도 이에 대한 확인서 제출을 완강히 거부했다"면서 "검사 종료 후 담당 국장과 본부장 등 상급자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주재성 은행업서비스 본부장은 "안 실장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았고 당시 담당 국장인 김영대 은행서비스총괄국장이 원장에게 보고했다"고 확인했다.

이는 금감원이 라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어서 향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야당 의원들,감독당국 책임론 제기

이날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은 신한 사태에 금감원이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건 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이 작년 종합검사에서 라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행장이 라 회장의 차명계좌와 관련한 서류를 파기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은 당 우제창 의원은 김 원장과 주재성 은행업서비스 본부장 등을 상대로 "당시 금감원은 신한은행으로부터 라 회장의 지시로 금융실명제를 위반했다는 확인서까지 받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추궁했다. 임영호 자유선진당 의원도 "금감원이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김 원장은 이에 대해 "금감원은 비호나 은폐한 사실이 없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기 신한금융 회장에 정권 실세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있다는 신 의원의 주장에는 "(신한금융의 차기 문제는) 지배구조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정무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라 회장을 오는 22일 열리는 금융위와 금감원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정무위는 라 회장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국회 차원에서 고발 조치에 들어가기로 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