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주사파 노동운동가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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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주체사상에 푹 빠져 밤새 관련 서적을 탐독했었죠.10년 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TV에 비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3대 세습이라니….정말 실망했습니다. "
대학 때부터 주체사상에 빠져 김정일을 흠모했다는 민주노총의 모 간부가 얼마 전 사석에서 내뱉은 자조 섞인 말이다. 그는 1980년대 주사파들이 주축이 된 민족해방파(NL계)에 들어가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졸업 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줄곧 친북반미(親北反美)를 외쳐온 골수 주사파였다.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그에게 절대적 존재였고 이들이 만들어낸 주체사상은 그의 정신세계와 삶을 완전히 지배했다. '정치의 자주,경제의 자립,군사의 자위'를 내세운 주체사상은 이론적으로 어떤 이념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런 그에게 김정일이 3대 세습을 굳히며 전 세계에 웃음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
요즘 좌파 진영 내에서 북한의 3대 세습을 놓고 충돌이 빚어져 국민들이 무척 혼란스러워 한다. 북한에 대한 논쟁은 으레 좌 · 우파 간의 단골메뉴였는데 좌파끼리의 다툼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좌파진영 내 논쟁은 친북노선을 견지해온 NL계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노선을 추종해온 민중민주파(PD계) 간의 갈등이다. 여러 계파가 무차별적이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NL과 PD 양 계파의 이념적 노선 차이에서 오는 다툼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과 이수호 전 최고위원 등이 민주노총 내 국민파(NL계) 출신이고 진보신당의 심상정 노회찬 단병호 전 의원 등은 민주노총 중앙파(PD계) 출신이다. PD계와 NL계가 함께 민주노동당을 창당했지만 노선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8년 진보신당이 떨어져나갔다. 한 지붕에서 동거를 못할 정도로 간극이 벌어진 상태다. 현재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논객들은 어느 한쪽 계파에 붙어 상대 노선을 공격하고 있지만 친북 성향이 강한 NL 쪽이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민노당과 민주노총 내 국민파,친북세력 등 NL계에선 주체사상에 대한 교조주의적 성향이 강한 만큼 3대 세습에 대해 어정쩡하고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북의 권력구조를 언급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된다.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민주노동당의 판단"(이정희 민노당 대표)이라는 식으로 논평도 비켜 간다. 민주노총 간부의 탄식처럼 속으론 무척 실망을 해도 겉으로는 대놓고 표현을 못하는 것이다.
반면 진보신당이나 민주노총 내 중앙파와 현장파,마르크스주의자 등 PD계열에선 북한의 세습을 강하게 비판한다. 민족주의보다 계급투쟁에 비중을 두는 이들에게 북한세습은 왕조시대에나 있어야 할 잘못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3대 세습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문제"(진보신당 논평),"국가 체제는 민중 입장에서 봐야 되는 것"(손호철 서강대 교수) 등의 비판을 쏟아낸다.
그렇다고 좌파 내 계파 간 싸움에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그들끼리의 노선 싸움이다. '3대 세습 왕조의 희극'을 비판한다고 해서 옳고,침묵하면 그르다는 식으로 시시비비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일반 국민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주사파 노동운동가도 실망스럽다고 한숨을 쉬는 마당에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대학 때부터 주체사상에 빠져 김정일을 흠모했다는 민주노총의 모 간부가 얼마 전 사석에서 내뱉은 자조 섞인 말이다. 그는 1980년대 주사파들이 주축이 된 민족해방파(NL계)에 들어가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졸업 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줄곧 친북반미(親北反美)를 외쳐온 골수 주사파였다.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그에게 절대적 존재였고 이들이 만들어낸 주체사상은 그의 정신세계와 삶을 완전히 지배했다. '정치의 자주,경제의 자립,군사의 자위'를 내세운 주체사상은 이론적으로 어떤 이념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런 그에게 김정일이 3대 세습을 굳히며 전 세계에 웃음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
요즘 좌파 진영 내에서 북한의 3대 세습을 놓고 충돌이 빚어져 국민들이 무척 혼란스러워 한다. 북한에 대한 논쟁은 으레 좌 · 우파 간의 단골메뉴였는데 좌파끼리의 다툼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좌파진영 내 논쟁은 친북노선을 견지해온 NL계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노선을 추종해온 민중민주파(PD계) 간의 갈등이다. 여러 계파가 무차별적이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NL과 PD 양 계파의 이념적 노선 차이에서 오는 다툼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과 이수호 전 최고위원 등이 민주노총 내 국민파(NL계) 출신이고 진보신당의 심상정 노회찬 단병호 전 의원 등은 민주노총 중앙파(PD계) 출신이다. PD계와 NL계가 함께 민주노동당을 창당했지만 노선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8년 진보신당이 떨어져나갔다. 한 지붕에서 동거를 못할 정도로 간극이 벌어진 상태다. 현재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논객들은 어느 한쪽 계파에 붙어 상대 노선을 공격하고 있지만 친북 성향이 강한 NL 쪽이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민노당과 민주노총 내 국민파,친북세력 등 NL계에선 주체사상에 대한 교조주의적 성향이 강한 만큼 3대 세습에 대해 어정쩡하고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북의 권력구조를 언급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된다.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민주노동당의 판단"(이정희 민노당 대표)이라는 식으로 논평도 비켜 간다. 민주노총 간부의 탄식처럼 속으론 무척 실망을 해도 겉으로는 대놓고 표현을 못하는 것이다.
반면 진보신당이나 민주노총 내 중앙파와 현장파,마르크스주의자 등 PD계열에선 북한의 세습을 강하게 비판한다. 민족주의보다 계급투쟁에 비중을 두는 이들에게 북한세습은 왕조시대에나 있어야 할 잘못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3대 세습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문제"(진보신당 논평),"국가 체제는 민중 입장에서 봐야 되는 것"(손호철 서강대 교수) 등의 비판을 쏟아낸다.
그렇다고 좌파 내 계파 간 싸움에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그들끼리의 노선 싸움이다. '3대 세습 왕조의 희극'을 비판한다고 해서 옳고,침묵하면 그르다는 식으로 시시비비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일반 국민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주사파 노동운동가도 실망스럽다고 한숨을 쉬는 마당에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