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14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 말을 여섯 번이나 사용했다. 글로벌 환율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그는 물가가 오르고 있어 한은이 대응할 필요가 있지만 이보다는 환율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도 본격적으로 환율전쟁에 뛰어드는 순간이다.

◆환율 위해 연내 동결 가능성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앞으로 주요국 경기 및 환율의 변동성 확대 등이 세계경제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주요국 경기의 변동성 확대 등이 세계경제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달엔 '환율의 변동성 확대'라는 문구를 새롭게 추가했다.

금통위는 또 국내 금융시장 동향에 대해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유입 확대 등의 영향으로 환율이 하락했다"는 표현도 새로 넣었다. 금통위원들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외국자본 유입 증가→원화가치 상승(원 · 달러 환율 하락)→수출 감소→경제 회복세 둔화라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다음 달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환당국이 환율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 힘든 만큼 기준금리 인상은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환율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10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 이상으로 치솟는 충격적인 일이 없다면 연말까지 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철수 대우증권 채권운용부 차장도 "채권시장 참가자 상당수가 글로벌 환율전쟁 때문에 내년 이후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환당국의 잇단 조치

한국의 정책당국은 글로벌 환율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이미 취하거나 모색 중이다. 한은과 금융감독원은 외국계은행 서울지점과 국내은행을 대상으로 외환관련 특별검사를 실시키로 했다. 1차 검사 대상에는 JP모건체이스와 모건스탠리,싱가포르개발은행(DBS),BNP파리바 등이 선정돼 19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진행된다.

금융당국은 선물환포지션 한도 위반 여부를 점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외선물환차액결제(NDF) 시장에서 투기가 벌어졌는지 여부도 체크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특별검사는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추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3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이 한국과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언급하자 즉각 항의했다. 김익주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 일본 재무성 국제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강력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해 다짐을 받았다. 김중수 총재도 "특정 나라가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 자체는 적절하지 않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노다 재무상은 그러나 한국 정부의 항의에 대해 모른다고 말해 한국을 자극하고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 때 과세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지난해 5월 중단한 과세 카드를 다시 꺼내면 외국인의 채권 매입 메리트가 낮아질 것이란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비과세는 씨티은행의 글로벌국채지수(WGBI) 편입의 전제조건이지만 WGBI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검토 의지를 내비쳤다.

◆서울 정상회의가 분기점

글로벌 환율전쟁은 다음 달 2,3일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1차 고비다. FRB가 이 회의에서 2차 양적완화(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것)를 결정하면 달러가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골드만삭스는 FRB의 2차 양적완화 규모가 1차 때 1조7000억달러의 50%를 웃도는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음 달 11,12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도 분기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회원국들은 서울에서 환율전쟁에 대해 논의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환율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각 국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점이 도출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환율전쟁은 상당 기간 지속돼 한국에 부담을 줄 공산이 크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