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권리와 기회의 평등이지 소득의 평등은 아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쿠바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자본주의식 개혁 폭풍이다. 전체 공무원의 20%인 100만명을 해고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는가 하면,개인 이익을 보장하는 자영업 육성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통제된 계획경제로 북한과 함께 '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루'로 불렸던 쿠바가 시장경제를 끌어안는 '우향우(右向右)'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쿠바가 자본주의의 강에 드디어 발을 담갔다"(월스트리트저널)는 평가도 나온다. 독일 사민당 당수(1995~1999년)를 지낸 오스카 라폰텐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이라고 치켜세운 모델이 바로 쿠바다. 쿠바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빗장 여는 쿠바

쿠바의 최근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다. "사회주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충격파"(AP통신)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사기업과 자영업자 육성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84)에서 동생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79)으로 권력의 정점이 옮겨가며 이뤄지고 있는 쿠바 경제 개혁의 핵심이다.

쿠바 정부는 지난달 15일 51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의 20%인 100만명을 해고,자영업과 민간기업으로 흡수한다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자영업 허용 분야는 회계사,목욕탕 보조원,가정교사,화훼상인 등 총 178개에 달한다. 특히 1992년 이후 허용했던 자영업 중 '팔라다레(식당)'는 좌석 12개를 초과할 수 있게 규제를 풀었다. 쿠바 식당은 메뉴와 식당 위치까지 규제를 받았다. 수도 아바나에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초호화 호텔을 짓기로 하는 등 해외 관광자본 유치를 위한 광폭(廣幅) 행보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1억1700만달러가 투입되는 이 호텔은 650개의 객실을 갖출 예정이다.

서방국가의 관심을 모은 또 다른 변화는 대대적인 골프장 육성책이다. 쿠바는 지난달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해 16개의 골프장을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쿠바에는 단 두 곳의 18홀 골프장이 있을 뿐이다. 사실 골프는 피델 카스트로도 광적으로 즐겼을 만큼 쿠바의 인기 스포츠였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점차 금기시됐다. 정부가 골프에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꼬리표를 달았기 때문이다. 쿠바의 변신에는 관광업을 살리겠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설탕 니켈 담배 커피 등 기초제품을 제외하고는 제조업에서 특별한 주특기가 없는 쿠바로선 관광업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회주의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바티스타 친미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정부가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우는 것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보장하는 쿠바는 국내총생산(GDP)의 7%를 의료복지에 쏟아붓고 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쿠바인의 평균 수명은 77.3세로 상당히 길다. 쿠바인 98%가 가족 주치의 제도0의 보호를 받는 덕분이다. 쿠바 국민 180명당 1명의 의사가 있다. 미국(480명) 영국(450명)보다도 많다.

그러나 망가진 경제는 이를 모두 무색케 한다. 쿠바 어디를 가든 "1달러만 달라"는 어린이들의 구걸이 흔하다. 국영 농업의 실패와 무역량 급감에 따른 생필품 부족 탓이다. 쿠바 국립통계소에 따르면 지난해 쿠바 총 무역액은 127억달러로 2008년(193억달러)보다 34% 줄었다. 총 수출은 21% 줄어든 31억달러로 집계됐다. 피델 카스트로가 최근 "쿠바식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고백한 것도 이 같은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쿠바 경제가 급속도로 위축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초 옛 소련의 붕괴로 경제원조가 끊기면서부터다. 한순간에 교역규모가 80%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강화하면서 쿠바의 국내총생산은 3년 새 45%나 감소했다.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한 설탕산업은 물론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하는 시가(cigar) 등 담배산업도 위기를 맞았다.

의사 간호사 등 전문인력 수출 등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흡수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 끝에 쿠바는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2008년 발생한 국제 금융위기와 최근 들어 빈발하는 허리케인 등 이상기후는 이런 회생노력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중국식 '하이브리드 경제' 성공할까

쿠바는 사회주의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이른바 중국식 '하이브리드' 경제로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전 세계 유일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없애겠다"고 다짐한다. 매장량 기준 세계 3위권인 니켈과 최대 40억배럴로 추정되는 석유자원도 적극 개발한다는 복안이다.

문제는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계획경제에 길들여진 쿠바 사회다. 그동안 농지 일부 사유화 등 크고 작은 자본주의식 개혁정책을 밀어붙였음에도,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은 것이 이를 보여준다. 공무원들에게도 목표 달성 실적의 5~30%를 인센티브로 지급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공무원 해고라는 초유의 개혁을 지켜보는 쿠바인들은 이제 실업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지에는 정부가 신규 자영업자들로부터 10~40%라는 고율의 세금을 거둘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좀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미국과의 냉전은 정권을 짓누르는 최대 과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쿠바에 '시장경제'가 아닌 '민주주의' 도입을 줄곧 요구해왔다. 그는 "국가적 이익을 위해 쿠바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미국은 자국민의 쿠바 입국은 물론 쿠바를 여행한 외국인들의 미국 입국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제도로 '착한 독재'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쿠바의 '생존을 건 투쟁' 결과가 주목된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