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식사동 동국대 일산병원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난 8월 입주를 시작한 식사지구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인근 고양 덕이지구 · 파주 운정지구와 더불어 수도권 북서부 지역의 대표적 '입주포기 대란' 지역으로 꼽히던 곳이다.

이곳에선 요즘 하루가 다르게 입주대란 흔적을 지워가고 있다. 중소형 전세거래가 늘면서 빈집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분양권에 붙었던 '마이너스 프리미엄'도 사라지고 있다. 대형 평형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입주율이 50%대에 육박하면서 전용 84㎡와 108㎡는 분양가 수준을 회복했다. 실수요자 위주로 중소형 아파트 수요가 형성되면서 수도권 부동산 시장도 조금이나마 활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나는 중소형 매매

'입주폭탄' 지역으로 꼽히는 용인시도 몇 달 전과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 싼 전셋집을 구하려는 서울 강남,판교 · 분당 세입자들이 몰리면서 빈집이 거의 동났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일부 실수요자들이 중소형 매입에 나서 동천 · 죽전 · 상현 · 성복동 전용 60~85㎡ 집값은 저점 대비 최고 1500만원 올랐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이달 8~14일 용인아파트 값은 직전주에 비해 0.02% 상승했다. 용인아파트 값이 오르기는 지난 1월 중순 이후 9개월 만이다.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자 서울에서도 강북권을 중심으로 중소형 아파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상계동 보람아파트 전용 68㎡는 한 달 전보다 2000만원가량 오른 2억8500만원,봉천동 현대아파트 전용 58㎡는 500만원 상승한 2억6000만원으로 시세도 올랐다.

김주철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중소형 매수세는 화성과 양주 등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은 수도권 외곽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서울은 중소형 매수세가 약해 호가 위주로 오르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팔려 나가는 악성 미분양 물량

악성 미분양 물량도 하나 둘씩 주인을 찾고 있다. 내년부터 수도권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40% 가까이 줄어드는 데다 전세난이 지속되자 관망세를 보이던 일부 대기 수요자들이 할인판촉 중인 미분양 매입에 나서고 있다. 한 분양대행업체 관계자는 "한 달에 10채 팔기도 어려웠는데 9월부터는 20~25채를 처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수요자들의 움직임은 법원 경매시장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강은 지지옥션 기획팀장은 "지난달 3억원 이하 중저가 수도권 아파트 낙찰가율은 8월에 비해 1.8%포인트 상승했다"며 "중소형 경매아파트가 일부 품귀를 빚자 실수요자들이 빌라나 다세대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대형은 여전히 찬바람

온기가 돌고 있는 중소형과 달리 중대형은 낙폭이 줄긴 했지만 매수세가 여전히 끊긴 상태다. 개포동 등 서울 강남권과 분당신도시의 급매물만 간혹 소화될 정도로 거래가 뜸하다. 분양권 시장에서도 고양 식사지구,인천 청라지구 등지에서 중대형은 여전히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3000만원가량 붙어 있다.

중대형은 분양시장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올해 말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분양 예정인 전용 120㎡ 이상 중대형 2000여채의 공급을 내년으로 미뤘다.

중소형 거래가 살아나고 수도권 미분양이 팔려 나가고 있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시장 전망에 여전히 신중한 모습이다. 곽창석 나비에셋 대표는 "중소형 위주로 매수세가 살아나고 악성 미분양이 소진되는 등 부동산 시장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아직 매수 기반이 취약하고 중대형은 하락하고 있어 본격적인 추세전환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규정 부동산114 리서치본부장도 "전셋값 비중이 낮은 곳은 여전히 매수세가 뜸하기 때문에 일부 지역의 중소형 매매가 상승이 다른 지역이나 중대형으로 확산될지는 미지수"라며 "시장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특별한 재료가 없는 한 국지적인 상승에 그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