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완도항에서 청산도행 배를 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진현조(條)에 선산도(仙山島)로 등장하는 청산도는 임진왜란 후 조정에서 도서금주령(島嶼禁住令)을 내리는 바람에 한동안 무인도였으나 16세기 말 다시 주민이 이주함으로써 유인도가 됐다. 이 섬이 널리 알려진 것은 1993년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감동적인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되면서부터였다. 배가 출항하기 전 무료한 시간을 메우려는 듯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색소폰으로 '선창'이란 가요를 연주한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맺은 백일홍…."

영화 '서편제'의 배경 청산도

동망산 자락에 우뚝 서서 항구로부터 멀어져 가는 배를 배웅해주는 완도타워가 '이슬 맺은 백일홍' 같다. 배는 오른쪽에 대모도 · 소모도,왼쪽에 신지도를 거느린 채 45분가량을 달리더니 청산도 도청항에 승객을 내려놓는다. 1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였던 당리로 가는 길,그물을 겹겹이 펼쳐놓은 듯한 도락리 마을 다랭이논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세상에 벼 익어가는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은 그리 많지 않다. 당재언덕에 서자 유봉 일행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면서 내려오던 황톳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기 가는 저 기럭아 말 물어보자 우리네 갈 길이 어드메뇨…." 정처없는 삶에 지친 듯 터벅터벅 언덕을 걸어 내려오던 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북을 둥둥 치던 장면이 삼삼하다.

언덕 아래 당리마을,유봉이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던 초가로 발길을 옮긴다. 쪽마루에는 동호가 북을 치고 머리에 똬리를 얹은 송화가 '춘향가'의 옥중가 중 '쑥대머리'를 연습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어디선가 "그까짓 천대받는 소리 해봤자 앞날이 뻔한디 언제까지 저 사람 따라 댕길거여?"라고 내뱉는 동호의 볼멘소리와 "그래도 나는 소리가 좋아.소리를 하면 만사를 다 잊고 행복해지거든"이라고 대답하는 송화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

보살상이 새겨진 읍리 하마비와 고인돌을 지나 청계리 범바위를 향해 오른다. 그 옛날 청산도에 살고 있던 호랑이가 권덕리 고개에서 바다를 향해 포효했는데 이 범바위가 더 크게 울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나보다 더 무서운 짐승이 있나 보다'라고 도망쳤다는 것.호랑이가 무서워했으면 곶감바위라 했어야지.안 그런가? 범바위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거북을 닮은 화랑포(아빠 거북)가 바라다보이고,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영락없는 거북 형상인 장기미(엄마 거북)와 상도(새끼 거북)가 모습을 드러낸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청산도는 거북이 알을 낳고 바다를 바라보는 이른바 금구망란형(金龜望卵形)의 길지 · 명당이다. 이곳 범바위의 호랑이와 건너편 매봉산의 매가 금거북의 알을 지키는 수자리 군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나 할까.

환경을 초극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구들장 논

동촌리로 내려가는 길,산비탈에 첩첩이 쌓인 구들장 논을 바라본다. 청산도는 경사진 데다 돌이 많아 물이 쉽게 빠져서 논으로 쓸 수 없는 땅이 많았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구들장 논이다. 돌로 축대를 쌓은 위에다 구들장처럼 넓고 얇은 바위를 깔고 바위 사이를 물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진흙으로 메운 다음 그 위에 흙을 깔아서 논으로 쓴 것이다. 마치 온돌방 만들듯 논을 만든 것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를 도와 방에 구들장을 놓아본 적이 있는 내겐 더욱 정답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어느 해인가는 대나무 죽석(장판)을 떠들자 구들장 속에서 갑자기 뱀이 뛰쳐나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청산도 논의 30% 정도가 구들장 논이라고 하니 섬 전체가 거대한 농업박물관인 셈이다. 수세미 · 박 · 동이 등 넝쿨식물이 기어가도록 자신의 등을 허락한 동촌마을 돌담길을 거닌다. 이리저리 굽은 고샅길을 거닐자 술래잡기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붙잡고 싶은 술래는 어린 시절이란 술래가 아닐는지.

지리마을 앞 밭두렁에선 마늘 파종이 한창이다. 청산도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반드시 이모작을 이어왔을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아아,인생에는 이모작이 없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다면 좀 더 열심히 살 것을….도청항으로 가는 슬로 길에서 초분을 만났다. 당재 당집 아래 초분처럼 관광용이 아니라 진짜 초분이다.

초분이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은 채 돌이나 통나무 위에 관을 얹어놓고 육탈될 때까지 이엉과 용마름 등으로 덮은 초가 형태의 무덤을 말하는데 2~3년 후 육탈하면 뼈를 씻은 다음 땅에 묻는다. 주로 서 · 남해 섬 지역에서 행해지던 장례 풍습인 초분은 본래 상주가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갑자기 상을 당했을 때 임시로 시신을 거치해 두기 위해 행해졌다고 한다. 엊그제까지 같이 밥술을 뜨고 얼굴을 맞대며 살았던 부모를 죽자마자 땅에 파묻는 게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도 한몫했을 것이다.

완도항으로 회항하는 배를 타고 청산도를 떠난다. '슬로시티' 청산도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여행이란 아무리 물을 줘도 금세 말라버리는 일상이라는 건조하기 쉬운 토양에 물이 쉽게 빠지지 않도록 나만의 구들장 논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름내 성급하게 내리쬐던 햇살이 어느새 청산도의 느림의 미학을 배웠는지 아주 느릿느릿 뱃전에 부서지고 있다.

안병기 < 여행작가 >


◆ 맛집

밥을 먹을 때면 종종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 인간의 눈빛이 스쳐간 모든 것들을/ 인간의 체온이 얼룩진 모든 것들을/ 국밥을 먹으며 나는 노래한다'는 김준태 시인의 '국밥과 희망'이란 시를 떠올린다. 밥이란 육신에 지피는 희망의 불씨다. 도청항 왼쪽을 보면 숙박을 겸하고 있는 등대민박식당(061-552-3690)이 보인다. 동태찌개 7000원,북어찜 2만원(대),매운탕 3만5000원(대) 2만5000원(소).섬이라서 육지보다 채소 가격이 더 비싸 가격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혹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시라.더구나 요즘은 배추가 금값인 시절이 아닌가.

◆ 여행 팁

청산도는 1993년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서편제'를 촬영했던 섬이다. 이곳말고도 남도의 여러 곳에서 촬영했지만 이곳이 유명한 것은 유봉 일가가 황톳길을 내려오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진한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5분30초에 걸친 롱테이크로 찍은 이 장면은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또 이곳 사람들이 아름답지만 척박한 토양에서 어떻게 자연에 대처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살필 수 있다. 청산도행 08:10,11:20,14:30,17:20 완도행 06:50,09:50,13:00,16:00,16:30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목포 IC→2번 국도→서호→13번 국도→해남→남창→완도대교→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