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사회에서 왕실과 귀족,평민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 마차였다. 마차를 끄는 말의 종류와 숫자는 탑승자의 신분을 그대로 보여줬다. 예컨대 예쁜 꽃 장식이 달린 마차를 네 마리 이상이 끌고 가면 귀족이 타고 있다는 의미다. 말에도 등급이 있었다. 왕의 마차를 이끄는 말은 갑옷을 착용했으며 돌발 사고에도 놀라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운송 수단이 바뀐 뒤에도 이 같은 전통은 이어졌다. 자동차 시대 초창기부터 왕족을 위한 차는 따로 만들어졌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롤스로이스,벤틀리,링컨,캐딜락 등은 이른바 '왕의 차''대통령의 차'로 불리며 명성을 쌓았다.

왕족 또는 대통령이 타는 자동차는 특별해야 했다. 순간적인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강력한 성능이 뒷받침돼야 했고,승차감도 좋아야 했다. 총알이 차체를 뚫을 수 없도록 방탄기능을 기본으로 갖췄고 폭탄에도 어느 정도 견디도록 설계됐다. 주행 중 타이어가 손상을 입어도 저격수 등의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시속 80㎞ 이상 주행이 가능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한 나라도 있다.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왕실과 대통령을 위한 차를 만드는 곳은 많지 않다. 미국은 링컨,캐딜락 등을 대통령 의전차로 사용한다. 캐딜락은 장의차로도 유명하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 타보기 힘든 차인 만큼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기 위해 활용했던 것이다.

독일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국빈 전용차다. 특히 S600은 전 세계 대통령들의 차로 입지를 확고히 지키고 있다.

영국에서는 롤스로이스가 단연 으뜸이다. 롤스로이스는 자동차 초창기부터 영국 왕실 전용차로 사용됐다. 여왕이 타는 차,왕자가 타는 차 등 이용자에 따라 일일이 손으로 맞춤 제작했다. 한때 롤스로이스는 아무에게나 차를 판매하지 않는 브랜드로 유명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4성 장군 아이젠하워가 롤스로이스에 차를 주문했다 거절당한 일화가 유명하다. 과거 왕실만을 위한 차를 만들어온 롤스로이스의 높은 자부심을 보여준 사례다.

프랑스는 자동차에서만큼은 실용이 우선되는 분위기다. 최근 열린 파리모터쇼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방탄도 되지 않은 평범한 르노 벨사티스 중형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 5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우리가 만든 차를 적극적으로 국빈용으로 활용할 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한국차가 최고 의전용차로 선정됐다니 다행이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