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천재시인 이상을 기리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올해로 천재 시인 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이상을 재조명하는 행사와 작업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 중 서울 대학로의 한 미술관에서 마련한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지난 주말에 보고 왔다.
전시회 제목인 '木3氏의 출발'이 약간 아리송하지만 그의 문학에 대해 조금만 알게 되면 쉽게 수긍이 간다. 이상의 시 중에는 '거울'이나 '이런 시'같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좋아할 만한 시는 몇 편에 불과하다. 그가 남긴 대부분의 시는 보통 사람들은 한 줄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무척 난해하다. 그 중에서도 어려운 작품으로 지목되는 '차8씨의 출발(且8氏의出發)'에서 이상이 문자를 형상으로 보고 상징화(且+八=具)한 것처럼 이번 특별전의 제목은 이상의 성인 '李'를 목(木)자와 숫자 3으로 풀어서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28세에 요절한 천재의 삶은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문학에 특별히 관심이 없어도 이상을 찾는 일반인 관람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가 살았던 1930년대에는 폐결핵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이상을 능가하는 시와 문학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인 불세출의 천재에게 운명은 왜 그리도 가혹해 세상을 일찍 떠나도록 했는지."스물세 살이오,3월이오,각혈이다. " 그의 소설 '봉별기(逢別記)'의 첫 문장이다.
불꽃같이 찬란한 천재로 짧은 삶을 살기보다는 평온하게 오래오래 긴 생을 누리고 싶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나마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기 전 160편이 넘는 문학작품을 남겨 한국 문학의 차원을 파격적으로 높여놨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전시회는 이상의 생애를 엿볼 수 있도록 학창시절 모습과 학적부 등을 소개하고 있고,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을 책임져야 했기에 건축으로 전공을 바꾼 이상이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입선했던 그림과 친구 박태원의 연재소설에 그렸던 삽화 등도 전시돼 있다.
감히 견주기 쑥스럽지만 필자에게도 한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이상은 자기 세계에만 몰두해 외부와 담을 쌓고 살던 기인이 아니었고 자기의 시를 신문에 싣기 위해 동료 정지용이나 박태원 등에게 나름 열심히 로비를 했었다는 대목도 친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상은 스스로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고 칭했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마음 속에 그는 언제까지나 시와 문학과 천재 예술가의 삶에 대한 매혹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이콘으로 살아있는 것 같다. 이번 특별전은 지난주로 막을 내리고 평창동의 한 문학관에서 '이상의 방' 기념전이 열린다고 하니,가을의 끝자락을 이상 탄생 100주년에 대한 추억과 함께 떠나 보내면 어떨까.
허정범 < 현대하이카다이렉트 사장 jbhuh@hicardirect.com >
전시회 제목인 '木3氏의 출발'이 약간 아리송하지만 그의 문학에 대해 조금만 알게 되면 쉽게 수긍이 간다. 이상의 시 중에는 '거울'이나 '이런 시'같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좋아할 만한 시는 몇 편에 불과하다. 그가 남긴 대부분의 시는 보통 사람들은 한 줄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무척 난해하다. 그 중에서도 어려운 작품으로 지목되는 '차8씨의 출발(且8氏의出發)'에서 이상이 문자를 형상으로 보고 상징화(且+八=具)한 것처럼 이번 특별전의 제목은 이상의 성인 '李'를 목(木)자와 숫자 3으로 풀어서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28세에 요절한 천재의 삶은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문학에 특별히 관심이 없어도 이상을 찾는 일반인 관람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가 살았던 1930년대에는 폐결핵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이상을 능가하는 시와 문학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인 불세출의 천재에게 운명은 왜 그리도 가혹해 세상을 일찍 떠나도록 했는지."스물세 살이오,3월이오,각혈이다. " 그의 소설 '봉별기(逢別記)'의 첫 문장이다.
불꽃같이 찬란한 천재로 짧은 삶을 살기보다는 평온하게 오래오래 긴 생을 누리고 싶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나마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기 전 160편이 넘는 문학작품을 남겨 한국 문학의 차원을 파격적으로 높여놨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전시회는 이상의 생애를 엿볼 수 있도록 학창시절 모습과 학적부 등을 소개하고 있고,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을 책임져야 했기에 건축으로 전공을 바꾼 이상이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입선했던 그림과 친구 박태원의 연재소설에 그렸던 삽화 등도 전시돼 있다.
감히 견주기 쑥스럽지만 필자에게도 한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이상은 자기 세계에만 몰두해 외부와 담을 쌓고 살던 기인이 아니었고 자기의 시를 신문에 싣기 위해 동료 정지용이나 박태원 등에게 나름 열심히 로비를 했었다는 대목도 친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상은 스스로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고 칭했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마음 속에 그는 언제까지나 시와 문학과 천재 예술가의 삶에 대한 매혹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이콘으로 살아있는 것 같다. 이번 특별전은 지난주로 막을 내리고 평창동의 한 문학관에서 '이상의 방' 기념전이 열린다고 하니,가을의 끝자락을 이상 탄생 100주년에 대한 추억과 함께 떠나 보내면 어떨까.
허정범 < 현대하이카다이렉트 사장 jbhuh@hicardirec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