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환율전쟁'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원하는대로 절상을 허용하면 자국경제가 큰 피해를 본다는 등 갖가지 논리를 내세워 앓는 소리다. 미국에 재정적자 관리나 잘 하라고 역공까지 편다. 미국도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에 절상속도를 높이고 절상폭도 확대하라고 요구한다. 미국은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지지세력을 모아 중국의 항복을 받는다는 계산이다.

이런 가운데 미 의회가 환율문제 청문회를 열 때마다 단골로 출석시키는 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을 만나봤다. 미 재무부 차관보 출신이기도 한 그의 시각은 미국의 위안화 대응전략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경제를 말한다…글로벌 인터뷰] (5) "위안화 절상 땐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온다고?…中의 억지"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이 1930년대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중국은 의도적으로 아주 장기간,아주 상당한 물량을 투입해 위안화 가치를 평가절하시켜 왔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무역국가입니다. 이런 국가가 노골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자국통화를 최소한 25%,혹은 그 이상 절하시키고 있는 것은 유례가 없어요. 지난 5년 동안 중국은 하루 평균 10억달러 규모로 외환시장에 개입해왔습니다. 게다가 수입관세율이 20%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한 보호주의 정책입니다. 중국이 시장 개입을 지속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상대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 개입을 따라할 수 밖에 없어요. 자칫 1930년대처럼 이웃을 가난하게 만드는 최악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습니다. "

▼중국이 위안화를 21% 절상한 2005~2008년 미국은 무역적자가 2020억달러에서 2680억달러로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절상요구 논리와 어긋나지 않나요.

"통화정책에 따른 효과는 2~3년을 두고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기간 양쪽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지요. 통화정책에 변화를 주면 제품가격과 주문,수출입 등에 일정기간을 거쳐 영향을 줍니다. 2006~2009년 중국의 글로벌 무역흑자와 미국의 글로벌 무역적자는 똑같은 비율로 줄었습니다.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기 침체외에 앞서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상한 영향이라고도 분석됩니다. "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글로벌화와 미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를 꼽았는데요.

"미국의 많은 제조업이 약 40년 동안 쇠락의 길을 걸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이지요. 하지만 제조업 생산성과 효율성도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노동생산성은 20~30년 동안 해마다 6%씩 높아졌지요.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경쟁력은 아주 강해졌습니다. 중국의 환율정책이 개선되면 미 제조업의 가격경쟁력이 커져 글로벌 경쟁력도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

▼중국은 위안화를 절상하면 1990년대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주장이예요. 일본의 경우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지나친 통화완화 정책을 사용한데다 금융시장 감독과 규제가 부실해진 탓이었습니다. 1985년 엔화 절상을 위한 플라자합의 탓이 아니지요.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 빠지기 전에 이미 경제성장률이 2~3%로 뚝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1960~1970년대 급성장하다가 성장이 둔화된 상황이었지요.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연평균 10% 성장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10년이나 20년 더 고속성장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중국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노동력이 풍부하고 장기간에 걸쳐 시장화해야 할 부분도 많아요. "

▼미 재무부는 왜 중국을 환율조작국 리스트에 올리질 않나요. 중국 측의 보복을 두려해서인가요.

"중국은 다른 국가들이 압박을 가하면 위안화를 더 절상하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있습니다. 저는 국제통화와 환율문제를 지난 40년 간 연구해 왔는데 어떤 국가도 외부의 압력 없이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어요. 그래서 다국적인 대중국 압박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 국채를 매도하거나) 미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는 등의 중국측 보복을 미 재무부가 두려워한다고 보진 않아요. 단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위안화 절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한다고 봐야겠지요. "

▼한국이 다음달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미 · 중 환율문제를 중재해낼 묘안이 있다면.

"중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들이 세계경제 불균형을 당장은 가능하지 않더라도 2~3년에 걸쳐 해소해야 합니다. 위안화 환율문제는 중국과 미국 간 문제에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하면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는데 이는 무역상대국들에게 많은 손실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효율적으로 다른 참가국의 지지를 모아 중국의 환율제도 개선에 다자적인 압박을 가하도록 중재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환율제도를 다자가 모니터링할 수 있는 메카니즘도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

▼과거 한국은 중국과 마늘분쟁을 겪은 적이 있는데요.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맞서 한국은 낭패를 본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규모가 큰 국가예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책임이 큽니다. 중국,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중재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며 중재할 능력도 충분히 갖췄다고 봅니다. 중국이 다시 한국산 전자제품 수입을 막는다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

▼최근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했습니다. 중국의 환율 조작과 뭐가 다른가요.

"일본 정부의 시장개입이 도움이 되진 않지만 중국의 환율조작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우리 연구소는 일본이 시장개입을 하기 전 균형환율을 연구했습니다. 엔화환율은 달러 등에 대해 평균적으로 거의 공정하게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지요. 엔화는 8~10년 전만 하더라도 저평가돼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1993~1994년 심하게 시장에 개입했지요. 당시 저는 앞장서 일본을 강하게 비난했고,미국 정부가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엔화는 최근 6~12개월 동안 대폭 절상됐습니다. 이게 거의 균형수준이라는 게 우리 연구소 분석결과입니다. 일본 정부가 개입해 더 절상되지 않도록 한다면 정당하다고 봐요. 일본의 개입은 균형환율 관점에서 방어 차원이라는 얘기입니다. "

▼미국이 위안화 문제를 WTO에 제소하면 승산이 있겠습니까.

"WTO 규정 15조는 특정 국가가 환율조작을 통해 WTO 정신을 위반하지 않도록 명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다른 많은 국가들이 제소할 수 있어요. WTO는 중국이 규정을 위반했다고 확정하면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수입장벽을 세울 수 있도록 권한을 주게 되지요. 다만 규정이 적용된 전례가 없어 이런 절차를 거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다른 하나는 현재 미 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방안인데요. 미국이 독자적인 법을 마련해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로 발생하는 이익을 수출보조금으로 간주,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미 행정부에 주는 것입니다. 중국이 미국의 대응을 WTO 규정에 위반이라고 판단한다면 맞제소할 수 있겠지요. WTO 규정을 위반한다면 미국은 상계관세를 철회하게 됩니다. 이같은 방식은 미국이 보다 빨리 결과를 얻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그래도 안될 경우는.

"중국은 2005~2008년 이미 위안화를 20% 절상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조치가 다시 필요합니다. 모든 문제가 해소되진 않겠지만 미국이 원하는 목표에 근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도 중국이 2~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20~25% 절상하는 방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는 그렇게 하겠다는 진지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중국은 국내 경기가 과열되고 부동산 거품이 일 조짐입니다. 위안화를 절상하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위안화가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달러의 독점적인 기축통화 지위를 다른 통화들이 나눠가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유로화가 2위 통화로 부상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위안화도 부상하겠지요. 위안화가 국제통화가 되려면 중국 정부의 정책이 변해야 합니다. 5~10년내에는 달성되지 못할 것으로 봐요. 그러나 20~30년 후를 본다면 달러,유로화, 위안화로 국제통화 3극 체제가 형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

▼한국의 무역수지는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에 한국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환율문제를 두고 아시아국가 간 협력하자는 구상입니다. 제2의 유로화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통화스와프협정을 넘어 환율정책 협력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아시아국가들이 서로 환율정책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면 세계경제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아시아지역의 플라자합의가 될 수 있어요. 아시아국가들의 환율이 같이 움직인다면 미국으로서도 환영할 일입니다. "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