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한참 넘긴 백발의 아버지는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이제는 쇠락해진 아버지의 육신과 농사일.어느덧 쉰살을 넘긴 아들이 아버지를 바라본다.

양문규 시인(51 · 사진)의 네 번째 시집 《식량주의자》(시와에세이 펴냄)는 한마디로 사부곡(思父曲)이다. 총 59편의 시편 중 절반이 '아버지'를 담고 있다.

'식량주의자였던 아버지 평생 농사꾼으로 산다/ 논과 밭과 한 몸으로 연민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아버지의 연대/ 쌀 보리 밀 콩 감자 고구마를 위하여/ 일흔,하고도 네 해 동안 보급 길 걸아왔다/ (중략)/ 똥막대기보다 못한 농사가 뭐 그리 대단해/ 폐농의 논과 밭 밟지 않고/ 사월과 오월사이/ 거침없이 자운영꽃 자청한 검붉은 울음/ 아직도 토해내는 것인가/ 새파랗게 빛나는 농사는 어디에도 없는데,'('식량주의자' 부분)

'햇살도 터져 내린 늦가을 저녁/ 찬 서리마저 핥아먹고/ 그렁저렁 한 주먹 살이 된/ 아,늙은 아버지// 아스라이 감나무에 매달려 있다. '('홍시' 전문)

시인이 물리적인 아버지만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충북 영동)으로 돌아온 지 10여년.시인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흙내음 가득한 과거 풍경과 기억을 그리워한다. '이제는 천천히 늙어가는 시간들에 대해,애틋하고도 진한 정서적 연대'(유성호 문학평론가)를 드러낸 셈이다.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농촌의 현실과 노인들만 늘어가는 세태는 시인이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자꾸만 쳐다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