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랑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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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살고 있는 큐레이터 베스는 남부러울 게 없는 커리어 우먼이지만 사랑에는 '꽝'이다.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로 간 그녀는 쓸쓸함을 달래려 찾은 '사랑의 분수'에서 동전을 몇 개 줍는다. 뉴욕으로 돌아온 베스에게 남자들이 열렬하게 구애하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다. 분수 속 동전들엔 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어 그 동전을 줍는 사람은 사랑을 받게 된다는 전설이 실현된 것이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로마에서 생긴 일'의 줄거리다.
분수에서 동전을 주워온다고 해서 무작정 사랑받는 일이야 없겠지만 사랑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은 틀림없다. 사마천의 '사기'에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용병술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위나라 오기 장군은 병사들과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으면서 누추한 곳에서 잠을 잤다.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등창으로 고생하는 것을 발견하자 오기는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이제 내 아들은 죽을지도 모른다"며 통곡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 아이의 아버지도 전쟁터에서 같은 일을 겪고 나서 장군의 사랑에 감복해 충성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
실제로 사랑엔 상당한 진통효과가 있다는 것을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밝혀냈다고 한다. 사랑에 빠지면 마약을 투여한 것처럼 뇌의 보상경로가 활성화돼 진통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실험 방법이 재미있다. 사랑에 빠진 학생들에게 애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볼에 뜨거운 침을 갖다 대는 방식을 썼다. 그 순간 뇌를 스캔했더니 고통을 덜 느끼더라는 설명이다.
실험에서 '공을 안 가지고 하는 운동 종목은?' 등의 질문으로 주위를 환기시켜도 진통효과가 있었으나 사랑에 빠진 것엔 못 미쳤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각성제를 먹었을 때와 비슷하게 식욕을 잃고 잠을 덜자며 에너지가 충만해진다는 미 국립약물남용연구소 노라 볼코 박사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랑의 마법'이란 말이 허구만은 아닌 셈이다.
사랑만큼 인간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온 것도 없다. 그런데도 아직 뭔지 잘 모른다. 그에 대한 정의도 제각각이다. 17세기 스페인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그라시안의 말처럼 사랑의 종류는 하나밖에 없으나 표현 방법은 수만 가지가 넘기 때문일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분수에서 동전을 주워온다고 해서 무작정 사랑받는 일이야 없겠지만 사랑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은 틀림없다. 사마천의 '사기'에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용병술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위나라 오기 장군은 병사들과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으면서 누추한 곳에서 잠을 잤다.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등창으로 고생하는 것을 발견하자 오기는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이제 내 아들은 죽을지도 모른다"며 통곡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 아이의 아버지도 전쟁터에서 같은 일을 겪고 나서 장군의 사랑에 감복해 충성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
실제로 사랑엔 상당한 진통효과가 있다는 것을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밝혀냈다고 한다. 사랑에 빠지면 마약을 투여한 것처럼 뇌의 보상경로가 활성화돼 진통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실험 방법이 재미있다. 사랑에 빠진 학생들에게 애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볼에 뜨거운 침을 갖다 대는 방식을 썼다. 그 순간 뇌를 스캔했더니 고통을 덜 느끼더라는 설명이다.
실험에서 '공을 안 가지고 하는 운동 종목은?' 등의 질문으로 주위를 환기시켜도 진통효과가 있었으나 사랑에 빠진 것엔 못 미쳤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각성제를 먹었을 때와 비슷하게 식욕을 잃고 잠을 덜자며 에너지가 충만해진다는 미 국립약물남용연구소 노라 볼코 박사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랑의 마법'이란 말이 허구만은 아닌 셈이다.
사랑만큼 인간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온 것도 없다. 그런데도 아직 뭔지 잘 모른다. 그에 대한 정의도 제각각이다. 17세기 스페인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그라시안의 말처럼 사랑의 종류는 하나밖에 없으나 표현 방법은 수만 가지가 넘기 때문일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