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피 마르는 가을…혈관 막힘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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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치의
정맥혈전색전증 유럽선 年 54만명 사망
아스피린보다 강한 혈액응고억제제로 예방…
'킬 힐' 신는 女, 만성정맥부전 주의를
정맥혈전색전증 유럽선 年 54만명 사망
아스피린보다 강한 혈액응고억제제로 예방…
'킬 힐' 신는 女, 만성정맥부전 주의를
가을엔 기온이 떨어져 혈관이 수축되고 체액이 감소해 혈액이 끈끈해진다. 거기에 식욕까지 왕성해져 지방층이 두터워지면 각종 혈관이 막히기 쉬운 조건이 된다. 더욱이 지난주부터 일교차가 심해져 심장병 뇌졸중 등 지병을 갖고 있는 환자는 물론 심부정맥혈전색전증(VTE)이나 하지정맥류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혈관 소통에 주의를 귀기울여야 한다. 저지방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중을 적정하게 유지하고 혈중 지방과 혈당을 낮추는 게 기본이지만 만성질환자에겐 약물요법도 필수적이다.
혈관 막힘을 방지하는 대표적인 약이 저용량 아스피린.1970년대 초반 아스피린이 혈소판의 응집을 차단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지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뇌경색 심근경색 등을 예방하는 필수약으로 추천하고 있다. 소염 · 진통 · 해열을 위해 먹는 일반적인 아스피린 복용량은 500㎎짜리를 하루에 최대 네 번 먹는 것이지만 뇌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저용량 아스피린 요법은 매일 100㎎짜리 한 알을 복용한다.
저용량 아스피린으로는 바이엘헬스케어의 '아스피린프로텍트'와 보령제약 '아스트릭스' 등이 대표적이다. 아스피린은 장기간 복용하면 위점막이 손상돼 속이 쓰리거나 위장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매일 복용해야 하는 저용량 아스피린은 위가 아닌 장에서 녹아 위의 부담을 현저하게 줄인 장용정(腸溶錠) 또는 장용캡슐 형태를 띠고 있다.
정맥혈전색전증은 정맥에 생성된 혈전(피떡)이 혈류의 흐름을 차단해 생긴다. 다리의 심부정맥에 혈전이 생성되는 심부정맥혈전증(DVT), 혈전에 의해 폐동맥이 막혀 발생하는 폐색전증(PE)이 이에 포함된다. 특히 폐색전증은 심한 경우 몇 분 내에 급사할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다. 이런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정맥혈전색전증은 여전히 진단이 어렵고 증상이 모호하게 진행돼 뒤늦게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이 질환은 주로 움직임이 적어 혈류 속도가 저하되고,외상이나 골절로 인해 혈관내피가 손상되어 혈액이 응고될 가능성이 높을 때 발생한다. 장시간 앉거나 서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비만하거나 당뇨병을 앓거나 임신한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고 비만한 사람이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장시간 앉아 여행할 때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을 겪게 되는데 정맥혈전색전증이 잘 동반된다.
고령으로,또는 대수술 및 지병으로 오랫동안 침상생활을 한 사람에게도 흔히 발생한다. 특이 암 수술이나 인공관절 수술 등을 받은 사람의 위험도가 높다. 한 조사에서 암 수술을 받은 환자의정맥혈전색전증 위험도는 일반인에 비해 91배 높게 나타났다.
인공관절 수술 환자는 절대 다수가 65세 이상의 고령인데다 수술 후 회복되기까지 오랫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므로 원활한 혈액순환이 어렵다. 특히 수술 도중 심장을 향하던 정맥혈류가 역류하면서 다리 대정맥이 손상되기 쉽다. 이 때문에 수술은 잘 됐어도 심부정맥혈전증으로 다리가 썩거나 폐동맥에 막혀 실신하는 환자들이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수술을 받은 후 예방요법을 받지 않은 환자들은 40~60%에서 정맥혈전이 생성되고,수술 후 첫 6주 동안 정맥혈전색전증이 발병할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22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맥혈전색전증은 국내서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유럽에서는 이와 관련된 질병이 연간 150만건 이상 발생하고 이 중 54만4000여명이 사망하고 있다. 이는 유방암,전립선암,에이즈,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이 질환은 아스피린보다 강한 혈액응고억제제를 복용함으로써 예방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사용된 약은 와파린으로 혈액을 응고시키는 데 관여하는 비타민 K를 억제해 혈액응고를 방지한다. 하지만 효과가 들쑥날쑥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출혈 등 부작용이 심했다. 다른 약물 또는 음식과의 상호작용도 많아 사용상 불편했다. 이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사용을 꺼려해 왔다.
최근에는 바이엘헬스케어의 '자렐토'(성분명 리바록사반) 등 혈전억제 효과는 우수하면서도 부작용이 거의 없는 차세대 혈액응고억제제가 등장해 환자들이 안심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최신약은 하루 한 번 복용으로 충분하고,음식 또는 약물과 상호작용이 없으며,모니터링도 필요치 않다. 자렐토는 혈액응고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10인자(Factor Xa)를 직접 억제하므로 폭넓은 약효를 가진다.
현재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환자의 정맥혈전색전증 예방용으로 허가됐다. 향후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예방,정맥혈전색전증의 치료,내과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의 정맥혈전색전증 1차 예방과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의 2차 예방으로 적응증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아스피린은 정맥에서 생성되는 혈전 예방에는 효과가 적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뇌경색 등 동맥 관련 질환에서만 1차,2차 예방제로 사용되고 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거나 굽이 높은 이른바 '킬 힐'을 신는 여성들은 만성정맥부전(CVI)을 주의해야 한다. 동맥을 통해 온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 혈액은 다시 정맥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다른 노폐물을 받아 심장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때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게 다리정맥의 판막이다. 이 판막은 종아리근육 수축운동과 함께 중력을 거슬러 정맥피를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시간 서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하지 정맥 판막이 약해지거나 손상돼 혈액이 심장 쪽으로 제대로 이동하지 못해 다리정맥에 혈액이 정체되고 이로 인해 다리가 붓고 무겁고 아플 수 있다. 이를 방치하면 하지정맥류,중증 습진,족부궤양과 같이 더 심각한 질환이 초래 될 수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중증 정맥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60% 이상이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서 있는 자세로 보내는 반면 규칙적으로 걷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6.3%만이 정맥질환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서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체중을 적정하게 줄이는 게 좋은 예방법이다. 이런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도 나와 있다. 독일계 제약회사인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안티스탁스'는 적포도 잎에서 추출한 플라보노이드가 주성분으로 다리가 붓고 무겁고 아픈 만성정맥부전(CVI)의 증상을 효과적으로 개선해 준다.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손상된 정맥 내피세포를 회복시켜 주고 정맥벽의 강도와 탄력성을 증가시켜 종아리 부종 및 다리의 중압감,통증,긴장감,욱산거림 등을 경감하는 효과가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됐다. 하루 한 알 복용하며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 약물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고 심해질 경우에는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하지정맥류와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악화된 경우에는 정맥제거술(스트리핑),경화요법,레이저치료 등 전문적인 치료를 고려해 봐야 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