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막대해졌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며 세계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위세가 약해진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은 '독야청청'하는 중국을 비난하기도 한다. 위안화 환율문제나 무역마찰 등이 심화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중국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의 국제경제 연구책임자인 왕하이펑(王海峰) 발개위 대외경제연구실장을 만나 중국과 세계의 발전 방향을 들어봤다. 왕 실장은 "세계 각국이 이젠 공통의 이익을 찾아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할 때"라며 "미국의 무역적자는 미국의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한 것인데,이를 위안화 환율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중국 경제 전망은 어떻습니까.

"9% 정도의 성장은 무난할 것으로 봅니다. 해외 수출시장과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가운데 정부가 의도한 대로 과열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다만 내년에는 성장률이 조금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로 전환하고 투자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8% 안팎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내년 성장이 둔화될 것이란 전망은 위안화 절상에 따른 수출 감소를 전제로 한 건가요.

"어느 나라건 통화 가치가 올라간다면 당장 수출이 영향받는 것은 마찬가지겠지요. 위안화 가치가 중국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만큼 올라가서는 안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위안화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란 이야기는 중국 경제의 체질 개선과 해외 시장의 불투명성을 감안한 것입니다. 환율이 급격히 떨어진다면 중국의 수출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제품을 팔아 2~3%밖에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수두룩하지요. 물가 관리와 내수 시장 확대를 위해선 위안화 환율이 떨어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중국 경제가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중국 정부가 점진적으로 환율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미국은 위안화 가치를 올려야 미국의 일자리가 늘고 그러면 미국의 소비 증가로 중국의 수출이 증가해 세계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미국의 일자리 창출 문제는 미국의 문제이지 중국이 해결해줘야 할 일이 아닙니다. 미국의 주장 대로 위안화 환율을 30~40% 떨어뜨린다면 중국 기업 중 살아남을 회사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 경제에 대혼란이 생기고 미국의 일자리 창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될 겁니다. '윈-윈(win-win)'의 길을 찾아야 하는데 공멸하는 방안을 내놓고 이를 수용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곤란합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도 않은데 왜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제 문제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지 정치적 계산이 깔리면 안됩니다. 지금은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할 때가 아니라 달러를 안정시킬 때입니다. 미국의 경제 구조 개혁이 더 시급한 문제입니다. "

▼쉽사리 해결점이 찾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국제적인 협력을 강화해야지요. 특히 경제 규모가 큰 나라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무역마찰이 환율분쟁으로 이어지고 다시 무역전쟁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나타난다면 가뜩이나 불안한 세계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미 이런 조짐이 보이고 있고 이것은 단순히 몇 개 나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한국의 원화 역시 절상 압박을 받게 되지요. 결국 모두가 서로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선 일정한 양보가 필요합니다. "

▼이런 관점에서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뭡니까.

"인민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환율제도를 관리변동환율제도로 다시 전환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세계와 함께 발전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중국의 위안화로 무역결제를 한다고 하니까 패권주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정말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제 화폐의 다원화를 통해 세계시장을 안정시키는 게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가지고 생각해야지요. "

▼그렇다면 아시아의 블록화 혹은 동북아시아권의 단일 통화도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본질적으로는 흥미있는 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세계 경제가 다극화 · 블록화되고 있어 아시아에서도 당연히 이런 논의가 나와야 합니다. 다만 EU가 만들어질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봅니다. 당시 유럽에선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가 여럿 있었지만 지금 아시아에선 국가별로 차이가 크지요. 중국과 한국 일본 사이에도 간극이 있고요. 단일 통화를 논의하기보다는 공통의 이익을 먼저 찾는 게 필요합니다. 예컨대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것이지요. 공동의 발전을 위한 틀을 만들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블록화의 밑거름이 되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10년 안에 아시아 지역에서 단일 통화가 만들어지긴 어렵습니다. "

▼내년부터 중국의 12차 5개년 계획이 집행됩니다. 핵심은 뭡니까.

"11차 때와 마찬가지로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 목표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전엔 화두를 던지는 데서 그쳤는데 이젠 그것을 구체화하고 실행에 옮기는 단계로 나갈 것입니다. 단순히 경제 구조를 고도화하는 것뿐 아니라 교육 환경 농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질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겁니다.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앞으로 10~20년 동안 계속 진행해야 할 작업입니다. "

▼산업정책도 고도화쪽으로 잡혀있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앞으로 중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할 분야는 어떤 것이 있나요.

"바이오나 에너지 절감,환경보호 분야 등이 꼽히고 있지요. 중국은 어차피 후발주자입니다. 노력한다면 기존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에 근접할 수 있겠지만 지배적 위치에 오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 분야에 집중 투자할 예정입니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분야들이지요. 더불어 서비스산업과 물류산업 육성에 정부의 관심이 높습니다. 서비스산업은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물류산업은 중국 대륙의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

▼중국은 계획 경제의 틀을 갖고 있습니다만 부동산 가격은 정부의 긴축 조치에도 오르기만 하는데요.

"경제 규모가 커지면 부동산 가격도 오르는 게 당연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중국 정부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고 계속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다만 그 대책들이 시장 경제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저가의 임대주택을 많이 지어 가격을 안정시키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대출 규제 등이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안정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더불어 부동산은 투자의 개념이 아닌 사회기반시설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

▼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고 있지만 내 · 외자 기업 간 차별로 사업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외자 기업에 중국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줘왔습니까. 토지도 싸게 내주고 세금도 깎아주지 않았습니까.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경제에는 외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그래서 외국 기업에 참 많은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산업구조조정 차원에서 일부 낙후업종에는 이런 혜택을 금지시켰습니다. 환경오염 업체에 외자 기업이라고 특혜를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첨단산업 등에는 여전히 3년 면세,5년 감세라는 특혜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무조건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면 곤란합니다. 정부조달에서 중국 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하겠다고 하자 여러가지 말이 많이 나왔는데 다른 나라에도 대부분 그런 제도가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도 토종 업체들이 성장했고 이들이 나름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내 · 외자 기업 간 경쟁체제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으로선 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정부가 내자 기업을 우대하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귀빈(VIP) 대접을 하다가 배려를 조금 줄여 일반 손님으로 대우하자 차별적 조치라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

▼한국과 중국 간 경제 교류는 양적으로 크게 확대돼왔습니다. 이젠 협력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바람직한 협력 모델은 무엇일까요.

"FTA를 맺게 되면 양적인 부분에서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양국 협력이 개선될 것입니다. 현재 양국은 민간차원의 연구를 끝냈고 정부 간 협의절차를 남겨놓고 있는데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FTA를 맺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각론으로는 무역 투자 금융 제도 등 네 가지 방면에서 더욱 관계를 공고히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특히 한국은 산업기술이 매우 발전해 있고 따라서 우수한 기업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산업기술 측면에서 보면 미국과 일본이 1그룹이고 한국과 대만이 2그룹에 속합니다. 중국은 더 뒤에 떨어져 있지요. 한국의 우수한 기업들이 중국에 좀 더 과감하게 투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국 등 외국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데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긴 안목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