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 힘 모아 이공계 살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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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한경과 '엔지니어클럽 전국대회' 여는 이부섭 회장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던 까까머리 학생은 화학 시간만 되면 눈이 반짝였다. 화학물질의 다양한 속성이 호기심을 자극했고,물질끼리 융합하면서 발생하는 반응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화학반 반장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서울 연희동에서 14대째 살고 있던 부모는 내심 영특한 아들이 의예과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이부섭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72 · 사진)은 19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공계를 선택했다"고 회고했다. 1962년 서울대 화학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다음 해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동진쎄미켐을 설립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와 1980년대 선적화물 화재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폴리염화비닐(PVC) 등에 첨가제로 사용되는 발포제 시장에서 세계 최대의 기업을 일궜다. 전자재료인 EMC와 포토리시스트 분야에서도 국내 최고 기업으로 3500억원 이상의 연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제는 남부러울 게 없는 최고경영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가슴 아픈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이공계 추락이다. 연구인력을 구할 때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느끼곤 한다. 열정을 가진 연구원을 구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국내 최고 대학 공대의 커트라인이 최하위권 의대 수준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이공계 지망생이 50%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20%도 안 됩니다. 산업의 기초체력인 이공계가 시들해지고 있어 우리 경제의 앞날이 큰일입니다. "
국내외에서 9개 공장을 가동 중인 이 회장은 특히 베이징 상하이 공장을 갈 때마다 중국에 쫓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중국은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한 회사에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등 파격적인 지원정책을 펴고 있고,각료의 70% 정도가 이공계 출신"이라며 "머지않아 우리 경제가 중국에 끌려다닐까봐 겁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50년 만에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고 자랑하지만 중국은 불과 20여년 만에 G2로 떠올랐다"며 "우리가 몇 년 후 내세울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안팎에서 위기감을 느끼던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에 취임한 후 이공계 살리기에 앞장서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배타적이고 권위적이던 클럽을 보다 젊고 개방적인 조직으로 바꾸고 지방조직 10곳도 새롭게 결성했다. 앞으로는 이공계 대학생도 주니어 회원으로 영입,내년까지 회원을 1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경제신문과 공동으로 22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전국단위로는 처음으로 개최하는 '한국엔지니어클럽 대회'도 '기술의 힘'을 키워보자는 뜻에서 마련했다. 회원들과 관련 부처 장관,경제단체장 등 650여명이 참석하는 이날 대회에서 한국엔지니어클럽은 비전과 활동계획을 발표하고 헌장을 낭독한다. 이 회장은 "한경이 몇 년 전부터 '스트롱 코리아' 기획 시리즈 등을 통해 이공계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어 이번 대회를 같이 열기로 했다"며 "향후 다양한 협력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엔지니어클럽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1974년 이공계 출신 인사들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다. 회원은 오명 전 부총리,정준양 포스코 회장,김우식 전 부총리,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등 1300여명.이 중 절반 정도가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들이다.
이 회장은 "1980년대 미국은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힘을 합쳐 '2061 프로젝트'를 추진,과학기금을 조성하고 이공계 대학원생이 입법 · 행정 · 언론 등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며 "우리도 '기술이 미래다'란 슬로건으로 이 같은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
서울 연희동에서 14대째 살고 있던 부모는 내심 영특한 아들이 의예과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이부섭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72 · 사진)은 19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공계를 선택했다"고 회고했다. 1962년 서울대 화학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다음 해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동진쎄미켐을 설립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와 1980년대 선적화물 화재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폴리염화비닐(PVC) 등에 첨가제로 사용되는 발포제 시장에서 세계 최대의 기업을 일궜다. 전자재료인 EMC와 포토리시스트 분야에서도 국내 최고 기업으로 3500억원 이상의 연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제는 남부러울 게 없는 최고경영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가슴 아픈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이공계 추락이다. 연구인력을 구할 때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느끼곤 한다. 열정을 가진 연구원을 구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국내 최고 대학 공대의 커트라인이 최하위권 의대 수준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이공계 지망생이 50%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20%도 안 됩니다. 산업의 기초체력인 이공계가 시들해지고 있어 우리 경제의 앞날이 큰일입니다. "
국내외에서 9개 공장을 가동 중인 이 회장은 특히 베이징 상하이 공장을 갈 때마다 중국에 쫓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중국은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한 회사에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등 파격적인 지원정책을 펴고 있고,각료의 70% 정도가 이공계 출신"이라며 "머지않아 우리 경제가 중국에 끌려다닐까봐 겁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50년 만에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고 자랑하지만 중국은 불과 20여년 만에 G2로 떠올랐다"며 "우리가 몇 년 후 내세울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안팎에서 위기감을 느끼던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에 취임한 후 이공계 살리기에 앞장서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배타적이고 권위적이던 클럽을 보다 젊고 개방적인 조직으로 바꾸고 지방조직 10곳도 새롭게 결성했다. 앞으로는 이공계 대학생도 주니어 회원으로 영입,내년까지 회원을 1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경제신문과 공동으로 22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전국단위로는 처음으로 개최하는 '한국엔지니어클럽 대회'도 '기술의 힘'을 키워보자는 뜻에서 마련했다. 회원들과 관련 부처 장관,경제단체장 등 650여명이 참석하는 이날 대회에서 한국엔지니어클럽은 비전과 활동계획을 발표하고 헌장을 낭독한다. 이 회장은 "한경이 몇 년 전부터 '스트롱 코리아' 기획 시리즈 등을 통해 이공계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어 이번 대회를 같이 열기로 했다"며 "향후 다양한 협력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엔지니어클럽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1974년 이공계 출신 인사들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다. 회원은 오명 전 부총리,정준양 포스코 회장,김우식 전 부총리,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등 1300여명.이 중 절반 정도가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들이다.
이 회장은 "1980년대 미국은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힘을 합쳐 '2061 프로젝트'를 추진,과학기금을 조성하고 이공계 대학원생이 입법 · 행정 · 언론 등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며 "우리도 '기술이 미래다'란 슬로건으로 이 같은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