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이버 공간을 떠돌던 이 이야기에서처럼 아버지의 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만큼 속이 깊다. 자식들 사랑한다는 표현도 애틋하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놓고 걱정하거나 슬퍼할 수도 없다. 김현승 시인은 그 처지를 '아버지의 마음'에서 이렇게 읊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묵묵히 참아내다 보니 늘 상처를 안고 산다. 비굴할 정도로 몸을 낮추기도 한다. 휴지처럼 구겨진 몸으로 식구들 먹을 것 사들고 노을 물든 차창에 흔들리는 퇴근길이 그나마 위안이다. '까칠한 주름살에도/부드러운 석양의 입김이 어리우고/상사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에도/십원짜리 눈깔사탕이 고이 쥐어지는/시간/가난하고 깨끗한 손을 가지고/그 아들딸 앞에 돌아오는/초라한 아버지'(문병란 '아버지의 귀로'중).
TV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초등학생의 '아빠는 왜?'라는 시가 인터넷 트위터 등으로 퍼지면서 가슴을 아릿하게 하고 있다. '엄마가 있어 좋다/나를 이뻐해주어서/냉장고가 있어 좋다/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 좋다/나랑 놀아주어서/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 아빠들이 관심을 갖고 좀 더 노력하라면서 자성을 촉구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거나 '눈물나는 아빠들의 초상' 등 애처로워하는 글도 많다고 한다.
엄마 노릇,자식 노릇이라고 쉬울 리 없지만 이 시대 아버지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사 할 때 이삿짐 트럭에 아버지가 제일 먼저 올라 앉는다는 서글픈 우스개도 있다. 아내와 아이들이 버리고 갈까봐 무서워서란다. 가정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는 아버지들이 마음 둘 곳은 어디인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