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부터 세계의 권력이 아시아로 이동한다. " "한국은 유교문화에 바탕한 교육열과 근면성으로 연 10%의 고도성장을 지속할 것이다. " "한국은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다. " "21세기에는 서구적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유교적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

지금이야 너무 당연시되는 내용이지만 1960년대에 나온 말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래학자였던 허먼 칸 박사(1922~1983)가 이 발언의 주인공이다. 천재로 평가받았던 그는 당시 초창기였던 미래학을 주도한 최고의 전문가였다. 1970년대 초에 낸 책 《미래의 체험》에서 그는 혁명적인 미래상품 100가지를 예측했는데 그 중 이미 95가지가 들어맞았다. 현금자동지급기,초고속 열차,위성항법장치 등이 그가 출현을 예고했던 상품들이다.

미래학이야말로 최근 가장 '각광받을 만한' 학문이 아닐까. 선진국에서도 금융위기가 연이어 터지고,초대형 글로벌 기업들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투자할 것인가. '권위 있는' 미래예측에 대한 갈증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칸 박사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그가 한국의 새마을운동에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칸 박사가 미국 허드슨연구소에 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그의 조교로 일했던 제롬 글렌 UN미래포럼 회장이 올 들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스승의 당부대로 함구해왔지만 새마을운동과 인연이 있는 김천에 UN미래포럼이 세계지구변화상황실을 짓게 되면서다. 글렌은 "새마을 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이 녹색성장에 관한한 선진국이었다"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칸 박사와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 등 아시아 리더들과 교류했던 칸 박사는 박 전 대통령을 만난 뒤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한국에 드나들었다. 칸 박사는 농촌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농촌 생활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며 이를 '그린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이것이 1972년 새마을운동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그린벨트 등도 두 사람이 교류하며 얻은 영감과 정보,예측 등과 깊이 연관된 것이다.

글로벌인재포럼 사무국장으로 수년간 국제 행사를 진행해오며 세계 각국의 리더,전문가,석학들과 교류하면서 가장 가치있게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바로 '큰 얘기'와 '먼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큰 변화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통찰력,그리고 10년,20년 뒤의 미래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미래예측력 등은 너무 부러울 정도다.

이런 얘기는 어떤가. "석유 이후의 에너지로는 조류(藻類 · algae)가 가장 효율적이다. 바다에 폐수와 조류가 담긴 플라스틱백을 흘려보낸다. 조류는 폐수에서 이산화탄소와 영양분을 받고 햇빛을 받으며 성장한다. 매주 기름을 채취해 에너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료로 쓰면 된다. 에너지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 "(조너선 트렌트 NASA 오메가프로젝트 총괄엔지니어)

이 프로젝트는 현재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미래학자들이 이를 예측한 지는 이미 수십년이 지났다. 한때 일본 여행 정도만 자주 다녀도 성공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이제 세계적인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쫓아다닐 정도가 됐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기업들이 미래를 직접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