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내 자동차 업체는 신차 출시 계획을 두 달 이상 미뤘다. 자동차 전자장비 구동에 필요한 반도체 가격이 일제히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늘어났고,일부 반도체는 웃돈을 줘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전자 장비를 만드는 협력업체들이 제때 부품을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반도체 소자의 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7~8배 수준에 달한다"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균형

자동차 반도체 수급이 어려운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 닛산은 지난 7월 자동차 반도체 부품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규슈 공장 등 일본 내 4개 완성차 조립공장의 가동을 3일간 중단했다.

자동차에 각종 첨단 전자장비가 장착되기 시작하면서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서다.

국내 완성차업체 및 관련 부품업체들의 차량용 반도체 구매처는 미국 프리스케일,독일 인피니언,프랑스 STM 등이다. 물량이 많은 업체는 반도체 회사와 직접 거래하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중간도매상을 통해 제품을 조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간도매상을 거칠 수밖에 없는 소규모 업체들이 반도체 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매하는 대형 자동차 업체들은 당장의 수급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다음 계약 때 대폭 가격을 올려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열풍이 부른 역작용

반도체 업체들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신차 판매가 급감한 2008년 말 제품 생산 규모를 평균 30%가량 축소한 뒤 자동차 경기가 획복된 올해에도 당시와 비슷한 물량만 자동차 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인기를 끌면서 과거 자동차 부문에 공급하던 반도체 물량 중 상당 부분을 전자 쪽으로 돌렸다. 트랜지스터 다이오드,범용반도체 등의 반도체는 자동차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도 들어간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체들이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반도체 품귀현상이 내년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개별 품목의 수요가 많지 않아 메모리 반도체처럼 대량 생산이 어려운 데다 팹리스로 불리는 전문 반도체 설계 업체들도 없어 당장 국산화도 힘들다.

시장조사기관인 SA는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관련 비용이 2016년까지 328달러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평균 비용 261달러보다 2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첨단 전자장비가 많아지면서 필요한 반도체의 양도 덩달아 늘어난다는 게 SA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가 자동차 업체에 '슈퍼 갑'으로 군림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자동차용 반도체의 국산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 자동차용 반도체

엔진과 변속기 상태를 제어하는 자동차 속 컴퓨터 ECU(electronic control unit)나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첨가된 내비게이션 등에 쓰이는 반도체를 통칭한다. 품목에 따라 다르게 설계해야 하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대부분이다. 삼성전자 등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와는 성격이 다르며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