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어떠한 형태의 차명계좌도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태광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한 질의를 받고 이같이 답변했다. 이를 위해 그는 금융감독 당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태광그룹뿐 아니라 신한금융이나 한화그룹의 경우도 최고경영자(CEO)나 오너의 차명계좌가 수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이 문제는 더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암적 존재로 떠올랐다.

금융실명제가 1993년 8월12일 실시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차명계좌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차명예금의 실질적 주인에 대한 대법원 결정도 오락가락했다. 대법원은 2000년엔 차명 예금이 실소유주에게 귀속된다고 결정했다가 2009년엔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곤 명의자를 실소유주로 본다고 뒤집었다.

물론 금융실명제법에는 비실명 금융자산이 적발될 경우 해당 금융자산의 50%를 과징금으로 물리고 이자배당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90% 원천징수토록 하는 금전적 처벌 규정이 있다. 하지만 차명이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변칙적인 상속 증여나 비자금을 숨기는 수단으로 차명계좌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차명계좌를 사용한 사람이나 명의를 빌려준 사람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제재를 강화하자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법조계의 반대 의견도 많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장관이 근절대책을 약속한 만큼 정부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우선 형사처벌 도입 여부 등 처벌 수위를 얼마나 높일지에 관해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또 기업들의 자금관리에서 차명계좌가 이용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없애면서 금융회사의 차명예금 관리에 대한 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윤 장관이 감독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차명계좌와의 고리를 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우선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