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의 최대 주주인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보유 지분 9.62%를 21일 전량 매각한다. 하나금융 측은 이에 대해 "테마섹이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서면서 발생한 일"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금융계 일각에서는 우리금융 민영화를 앞둔 상황에서 최대 주주가 지분 전량을 파는 것은 우리금융과의 합병을 추진하는 하나금융 방침에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테마섹 포트폴리오 재조정 일환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테마섹의 손자회사인 안젤리카 인베스트먼트는 21일 장 개시 전 동시호가 때 하나금융 주식 2040만주를 전량 매각키로 하고 이날 장 마감 뒤 외국계 증권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를 주관사로 매각 태핑 작업을 벌였다. 매각 가격은 주당 3만4300~3만5550원으로 이날 종가(3만5550원)보다 최대 3.5% 할인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테마섹은 2004년 하나은행에 투자하기 시작해 꾸준히 지분을 늘려왔고 2005년 하나은행이 하나금융지주로 전환하면서 최대 주주가 됐다. 테마섹이 보유 지분을 팔면 골드만삭스의 자회사인 GS데자쿠가 최대 주주에 오른다.

테마섹은 이번 매각이 금융 분야에 집중돼 있는 포트폴리오를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조정하고 매각 차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테마섹의 포트폴리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7%가 은행 등 금융 분야에 쏠려 있다. 하나금융도 테마섹의 지분 매각이 금융위기 때 대규모 손실을 입었던 은행주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테마섹은 작년 초 미국계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 전량(3.8%)을 처분했고 같은 해 6월 영국계 바클레이즈 은행 주식 2%가량을 매각했다. 두 은행 투자에 따른 손실만 55억달러에 달했다. 7.6%까지 보유했던 인도 2대 은행 ICICI의 지분도 꾸준히 줄여나가고 있다.

조기욱 하나금융 IR담당 부사장은 "테마섹이 장기적으로 은행주는 자국 최대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과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 두 곳만 갖고 간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안다"며 "테마섹과 지분 매각에 대한 사전 협의는 했지만 구체적인 매각 시점은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 부사장은 또 "SC가 다음 달 약 33억파운드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예정인데 SC 지분의 17.7%를 갖고 있는 테마섹이 여기에 참여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테마섹이 기존 지분율에 해당하는 만큼 SC 유상증자에 참여하려면 1조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하다. 하나금융 지분을 매각하면 테마섹은 약 7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하나금융,"우리금융 합병 이상 없다"

하나금융 측은 이번 최대주주 변경이 우리금융 민영화와는 무관하다며 당초 계획에도 전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해 테마섹과 협의한 적은 단 한차례도 없다"며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우리금융 민영화에 함께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다른 글로벌 금융사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계 일각에서는 테마섹이 하나금융의 우리금융 합병 추진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리금융과 합병할 경우 하나금융이 비용 부담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