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지난 주말 상하이의 엑스포 박람회장은 전쟁터였다. 일주일 전 주말에 하루 관람객이 100만명을 넘어선 데다 10월 마지막 주에는 관람료가 인상될 예정이어서 그런지 관람회장은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국가관 중에서 인기가 좋은 한국관은 무려 6시간 정도 줄을 서야 관람할 정도였으니 가히 줄서기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당일 억수처럼 쏟아진 비로 인해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겼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하거나 우산과 우비로 무장하느라 혼잡은 더 심해지면서 비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가장 인기가 좋은 그룹에 속하는 한 · 중 · 일 3개국의 관람관은 각각의 특색이 있었다. 특히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보는 동영상에는 각국의 특색이 잘 드러났다, 우리나라는 한류스타들을 내세워 화려한 정보기술(IT)과 애니메이션으로 강한 느낌을 주었다면 중국은 과거 경제적으로 힘들던 시절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현재의 달라진 모습과 대비시킴으로써 자국이 얼마나 크게 발전했는지를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한편 일본이 제공한 동영상의 내용은 좀 특이했다. 일본에서 멸종된 따오기가 중국에서 발견되고 이를 중국과 함께 힘을 합쳐 보존해 낸 후 중국이 일본에 따오기를 제공함으로써 일본에 다시 따오기가 살게 되었다는 스토리를 담았다. 올해 드디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중국의 GDP에 추월당하게 된다는 부분을 너무 뼈저리게 느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스쳐갔다.

같은 시간,치열한 전쟁이 국내에서도 벌어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경주에서 열린 것이다. 경주회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작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강력한 위안화 절상 요구와 이를 거부하는 중국과의 갈등이 증폭되는 데다 엔고를 겪으면서 애꿎은 한국의 원화까지 걸고 넘어지려 하는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갈등도 불거지는 등 어지러운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결국 G20 회원국들은 23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글로벌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경상수지 관리 목표를 정하고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를 이행하며 경쟁적 통화절하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쿼터이전 문제도 해결됐다. 환율전쟁이 일단 종결되고 휴전모드로 바뀐 셈이다.

중장기적인 목표에 대한 선언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가장 민감한 문제인 글로벌 리밸런싱을 위한 두 축인 경상수지와 환율문제가 모두 언급된 것은 의미 있는 결과다. 최근 위안화가 절상국면에 들어가고 중국이 금리를 올린 데에는 이 회의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면이 있었다는 것도 이 회의의 보이지 않는 성과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가장 부담스런 상황은 피하자는 측면에서 합의가 도출된 셈이다.

폐막 일주일을 앞둔 상하이 엑스포는 지금까지 약 6700만명이 찾아와 목표인 7000만명에 근접한 상태다. 그런데 상하이 엑스포에 지어진 수많은 국가관 중에서 유독 중국관은 우뚝 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나라 국가관의 높이는 20m로 제한되었는 데 비해 중국관만은 고도제한이 70m로 완화됐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룰을 바꾸면서까지 노골적으로 승부욕을 드러내는 중국을 보며 중국과의 일 대 일 협상이 얼마나 버거운 일이 되었는지,나아가 다자간 협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일단 휴전이 된 환율전쟁이 언제 또 벌어질지 불안한 심정이 앞서지만 그럴수록 다자간 협상으로서 G20 정상회의의 역할은 더욱 의미가 커지고 있다. 3주쯤 남은 회의에서 금번 합의가 구체화되고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