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페라 '메피스토펠레'…웅장한 선율·악마 연기에 객석 매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파우스트'의 본고장 독일 작곡가들은 이 걸작을 오페라로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독일은 문학의 나라이고 '파우스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장대한 대작인데 그걸 길어야 세 시간짜리 음악극으로 작곡했다간 평론가와 관객의 야유를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우스트'를 다룬 오페라는 거의 외국인 손에서 탄생했다.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영벌(永罰)'은 찬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구노의 '파우스트'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고,부조니의 '파우스트 박사'는 이탈리아 작곡가가 만들었지만 독일어 대본이란 점이 강점이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선보인 아리고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는 파우스트 대신 악마가 타이틀 롤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연출을 맡은 다비데 리베르모어는 이탈리아 사람인데,보수적 연출이 대세였던 이탈리아 오페라 계에서도 현대적인 재해석이 차츰 자리잡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를 줬다. 작곡자가 굳이 악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 착안해 리베르모어는 진지한 인물 파우스트를 지겨운 일상과 따분한 규범으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 세속적인 유혹에도 끌리는 인물로 파악했다.
따라서 파우스트라는 캐릭터는 평생 학문을 하다 늙어버린 중세의 노인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어느 공간에나 존재하는 현실적인 인물로 바뀌어 버린다. 리베르모어는 파우스트의 첫 등장 장면부터 지하철에서 로봇 춤을 추는 젊은이와 비보이 등 동시대적인 보편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메피스토펠레에게 붉은 날개를 달아준 것도 천사와 악마가 얼마든지 혼재하는 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선정적인 흥미로움으로 가득한 악마의 축제(2막) 등 연출자가 제공한 볼거리는 풍성했다.
그러나 논리적인 연결이 부족했다. 묵역으로 아기 천사와 어린 악마를 등장시켜 효과적인 몇 번의 깜짝쇼를 펼쳤지만 그것으로 단절돼 버렸고,악마의 축제는 퇴폐적인 나이트클럽 정도로 충분했는데 갑자기 때와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바뀌어버렸다.
음악적인 부분의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베이스 프란체스코 엘레로 다르테나(메피스토펠레)는 풍부한 성량과 악마적인 연기로 객석을 매료시켰다. 유럽 무대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테너 박성규(파우스트)는 서정적인 리리코와 강한 스핀토에 이르기까지 생각보다 훨씬 표현의 범위가 넓었고 무척 고급스런 소리를 들려줬다.
최고의 노래는 소프라노 임세경(마르게리타)이 들려줬다. 주인공 역으로는 왜소한 체격이 아쉬웠으나 투명한 음색과 압도적인 성량,감정을 풍부하게 살린 연기는 미쳐버린 마르게리타가 죽음을 맞는 3막을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어냈다. '메피스토펠레'는 대규모 합창으로 공연 효과를 고조시키는 작품이기도 한데,나라오페라합창단과 의정부시립합창단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다. 늘 인상적인 지휘를 펼치는 오타비오 마리노 또한 합창 장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등 오페라 합창의 매력을 십분 살려냈다.
유형종 < 음악칼럼니스트 >
그래서 '파우스트'를 다룬 오페라는 거의 외국인 손에서 탄생했다.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영벌(永罰)'은 찬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구노의 '파우스트'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고,부조니의 '파우스트 박사'는 이탈리아 작곡가가 만들었지만 독일어 대본이란 점이 강점이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선보인 아리고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는 파우스트 대신 악마가 타이틀 롤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연출을 맡은 다비데 리베르모어는 이탈리아 사람인데,보수적 연출이 대세였던 이탈리아 오페라 계에서도 현대적인 재해석이 차츰 자리잡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를 줬다. 작곡자가 굳이 악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 착안해 리베르모어는 진지한 인물 파우스트를 지겨운 일상과 따분한 규범으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 세속적인 유혹에도 끌리는 인물로 파악했다.
따라서 파우스트라는 캐릭터는 평생 학문을 하다 늙어버린 중세의 노인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어느 공간에나 존재하는 현실적인 인물로 바뀌어 버린다. 리베르모어는 파우스트의 첫 등장 장면부터 지하철에서 로봇 춤을 추는 젊은이와 비보이 등 동시대적인 보편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메피스토펠레에게 붉은 날개를 달아준 것도 천사와 악마가 얼마든지 혼재하는 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선정적인 흥미로움으로 가득한 악마의 축제(2막) 등 연출자가 제공한 볼거리는 풍성했다.
그러나 논리적인 연결이 부족했다. 묵역으로 아기 천사와 어린 악마를 등장시켜 효과적인 몇 번의 깜짝쇼를 펼쳤지만 그것으로 단절돼 버렸고,악마의 축제는 퇴폐적인 나이트클럽 정도로 충분했는데 갑자기 때와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바뀌어버렸다.
음악적인 부분의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베이스 프란체스코 엘레로 다르테나(메피스토펠레)는 풍부한 성량과 악마적인 연기로 객석을 매료시켰다. 유럽 무대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테너 박성규(파우스트)는 서정적인 리리코와 강한 스핀토에 이르기까지 생각보다 훨씬 표현의 범위가 넓었고 무척 고급스런 소리를 들려줬다.
최고의 노래는 소프라노 임세경(마르게리타)이 들려줬다. 주인공 역으로는 왜소한 체격이 아쉬웠으나 투명한 음색과 압도적인 성량,감정을 풍부하게 살린 연기는 미쳐버린 마르게리타가 죽음을 맞는 3막을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어냈다. '메피스토펠레'는 대규모 합창으로 공연 효과를 고조시키는 작품이기도 한데,나라오페라합창단과 의정부시립합창단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다. 늘 인상적인 지휘를 펼치는 오타비오 마리노 또한 합창 장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등 오페라 합창의 매력을 십분 살려냈다.
유형종 < 음악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