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없이 10개월째 파행 상태인 한국노동연구원의 정상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김세원 이사장이 노동연구원 정상화를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정부가 '연구원 살리기'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김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노동연구원 정상화를 위해 전제조건으로 △ 고용계약서 및 연봉제 도입 △사업비에서 인건비 지원하는 변칙 경영 시정 △정부 정책 싱크탱크로서의 위상 정립 등 3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이 3가지가 충족될 경우 공석 중인 원장을 선임하고 노동연구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장 직무대행은 "비록 전제조건이지만 정부가 연구원 정상화를 위한 기준을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제시한 데 의미가 있다. 이제 공은 연구원으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전제조건에 대해 연구원 내부의 조율이 잘 이뤄지면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박기성 원장이 단협 해지를 둘러싼 노사갈등으로 사퇴한 뒤 정부에서 예산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프로젝트도 발주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노동연구원 죽이기','좌파 연구위원 길들이기' 등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전제조건에 대한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아 노동연구원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일부 노동연구원 연구위원과 야당 의원들은 "연구원 정상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사실상 직원들의 백기투항을 요구하고 있어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고용계약의 경우 다른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이 모두 도입하고 있어 노동연구원만 계속 외면하기는 쉽지 않은 조항이다. 하지만 연구위원들은 고용계약서가 직원 길들이기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꺼리는 분위기다. 이들은 정부 정책과 다른 방향으로 연구사업을 진행하거나 원장 지시를 어겼을 때 계약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원장 직무대행은 "고용계약서는 다른 연구기관들 모두가 시행하고 있어 반대할 명분이 없다"며 "노조나 연구위원들이 이를 계속 반대한다면 연구원 정상화를 위한 협상 여지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변칙 경영 시정은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는 문제여서 직원들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항이다. 정상화 전제조건은 현재 금지돼 있는 사업비의 인건비 지원을 없애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건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현재 연구위원(박사) 포함 100명의 직원 중 16명에 대해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

김 원장 직무대행은 이와 관련,"예산 범위 내에서 몇 명을 감원할지,임금 삭감은 어느 정도 할지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좀 더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연구원 노사는 정상화를 위한 전제조건에 대해 이달 말까지 협의를 끝낸 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달 12일까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