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저신용자들을 위한 대출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농협 수협과 신협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등이 지난 7월 신용등급 6등급 이하를 주대상으로 하는 '햇살론'을 내놓았고,은행들도 곧 신용등급 5등급 이하를 주대상으로 하는 '새희망홀씨'를 내놓을 예정이다.
저신용자들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해 주는 것을 '친서민 정책'의 큰 줄기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다. 대부업체나 2금융권에서 연 30~40%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는 저신용 서민들이 연 10%대의 낮은 금리로 돈을 쓸 수 있게 해 이자부담을 크게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에 오래 몸을 담아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높건 낮건,대출을 받는다는 건 빚을 늘리는 것"이라며 "서민금융상품이 성공하려면 돈을 빌린 사람들이 자금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면 자체 신용으로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지 등을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출금리가 아무리 낮더라도 낭비성 생활비나 1회적인 경비로 쓰인다면 결국 빚만 늘어나는 '대출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햇살론을 다루는 금융회사들은 이 상품의 80% 이상이 생활자금 용도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된 대출용도로 내걸었던 창업자금과 시설투자자금으로 빌리는 돈은 채 20%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햇살론 대출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저금리에 쏠려 '일단 빌려쓰고 보자'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사업에 쓸 돈인지 여부를 엄격히 따지고 컨설팅까지 제공하는 미소금융은 '인기'가 없다. 시행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대출실적은 지난달 말까지 모두 320억원(3521명)으로 은행이나 기업들이 미소금융을 위해 낸 출연금의 10~15%에 그칠 정도다.

정부는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로 피해를 본 농민들을 달래기 위해 저금리 자금을 농민에게 대거 빌려줬고,그 결과는 30조원에 달하는 농가 부채였다. 서민금융상품도 농가 부채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재형 경제부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