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메신저 접속으로 출근 체크? "난 버스서 무선인터넷 하지"
김 과장은 죽을 맛이다. 어제 먹은 술이 아직도 혈관을 타고 도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근무시간 중 함부로 이탈할 수는 없는 법.마침 전화가 왔다. 거래처다. 큰 소리로 전화를 받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님이 와서 잠깐 만나고 오겠다"며 말이다.

손님은 무슨 손님.회사 옆 해장국집으로 달려가 허겁지겁 해장국을 시켰다. 사무실에는 거래처 손님이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이른 점심을 했다고 둘러댈 참이다. 그런데 웬걸.한참 건너 자리에 팀장이 해장국을 먹고 있는 것 아닌가. 주문한 해장국이 나오기 전에 슬그머니 일어섰다. 오늘 해장은 글렀다. 재수도 옴붙었다. '젠장할 구글은 낮잠용 수면캡슐까지 만든다는데,그러지는 못할 망정 땡땡이 칠 기회라도 줘야 할 것 아닌가'라는 자조가 절로 나온다.

◆졸기도 땡땡이의 기술

대기업 영업직인 나모 과장(36)은 과음하는 날이 잦다. 아무래도 아침 시간이 힘들 수밖에 없다. 물론 영업을 핑계대고 일찌감치 사우나로 가면 된다. 누가 뭐라지 않는다. 문제는 사무실에서 근무해야하는 날이다. 이런 날이면 그는 주차장을 찾는다. 자동차에서 쪽잠을 청한다. 딱 10분만 눈을 붙여도 몸은 한결 낫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곤한 잠을 자다가 그만 회의시간을 넘기고 만 것.같이 일하는 대리가 전화해 주기로 해놓고 깜빡해 버렸단다. 회의시작 후 30분이 지난 뒤 헐레벌떡 사무실에 올라간 나 과장은 "아침부터 왜 회사까지 찾아와 불만을 털어놓는지 모르겠다"며 씩씩거렸다. 팀원들은 "거래처를 만나고 오셨구먼요"라며 속아줬다.

중견회사 이모 대리(31)는 아무리 술을 먹어도 자리를 이탈하는 법이 없다. 그만의 노하우는 '졸기'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자판에 얹어 놓은 채 조는 모습은 특허감이다. 다른 사람이 흉내 내기 힘들다. 유심히 보고 있지 않는 한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속아 넘어가기 일쑤다.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는 박모씨(33 · 여)의 딴짓하기 단골장소는 화장실이다. 지겨워지면 화장실에서 세수도 하고 화장도 고친다. 동료들과 수다도 떤다. 두살배기 아이가 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집에 전화하는 곳도 화장실이다.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동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박씨는 그럴 때마다 '여자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무시한다.

◆기술을 아는 자가 땡땡이의 달인

끊임없이 진화하는 통신 기술은 '땡땡이족'에게 기회가 되기도,위기가 되기도 한다. 국내 한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김모 회계사(37)는 인터넷 메신저가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회계사는 업무 특성상 사내가 아니라 회계감사 대상 회사로 출근해서 바로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지각을 해도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메신저가 보편화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팀장이 매일 아침 메신저 접속 시간으로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한 것.위기에 봉착한 김 회계사는 다른 회계사가 가지고 다니던 넷북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휴대하기 간편한 넷북을 구입,출근길에 무선인터넷 등을 통해 메신저에 접속해 두고 있다.

대기업 상품기획팀에 근무하는 안모 과장(35)은 컴퓨터 화면 보호필름과 거울 콤비네이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컴퓨터 화면을 볼 수 없도록 보호기를 붙였다. 자동차의 사이드미러처럼 거울을 붙여놔 상사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다. 안 과장은 "여행 계획을 짤 때 반드시 엑셀로 짜야 일하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촌음을 아껴 애정행각 땡땡이를 벌이기도 한다. 오모 대리(31)는 만난 지 100일 남짓인 여자친구를 스마트폰으로 관리한다. 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 좋은 위치에 살짝 올려놓고 여자친구와 화상 전화를 켜놓고 일한다"며 "상사눈치 봐가며 몰래 V자도 그리고 애정표현도 한다"고 말했다.

◆땡땡이도 '부익부 빈익빈'

땡땡이에서도 빈부격차는 있다. 공기업 박모 과장(34)의 회사에서 빈부격차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장소에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미혼들은 아이디어 회의를 빙자해 인근 커피숍으로 몰려가 커피향을 즐긴다. 회사 비난,상사 성토에 열을 올리는 건 물론이다. 반면 박 과장처럼 돈 들어가는 구석이 많은 기혼들은 속칭 '벽다방'으로 불리는 자판기 커피나 회사에 비치돼 있는 믹스커피를 타서 들고 회의실로 들어간다. 박 과장은 "아내에게 눈치보며 용돈을 타서 쓰는 처지라 부하들이 커피 한잔 하자고 하면 회의실로 유도하곤 한다"며 웃었다.

생계형 땡땡이족도 있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문모 과장(37)은 자칭 '쇼퍼홀릭'이다. 그렇다고 문 과장이 백화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패션 리더인 건 아니다. 문 과장이 누비는 전장은 회사 옆에 신장개업한 슈퍼마켓.문 과장은 "새로 문을 열어서 그런지 매일 품목을 바꿔가며 과일과 야채를 싸게 팔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장을 보러 자리를 비운다"고 고백했다.

◆명분있는 땡땡이는 무죄

외국계 전산장비 기술영업 사원인 한모 과장(38)은 억대 연봉을 받는 S급 인재답게 땡땡이도 S급이다. 높은 실적의 원동력은 바로 땡땡이에서 나온다며 그는 늘 당당하다. 그의 활력소는 대낮 평일 골프.파트너들이 주요 고객사 실무진인 과장급들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한 과장은 파트너들에게는 '회사 장비 시연 초청장'을 보내고,회사에는 '고객사 방문 장비 시연'이라고 보고한다. 한 과장은 "땡땡이이긴 하지만 고객과 친밀감을 높인다는 점에선 어엿한 영업"이라고 강조했다.

한 공공기관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모 대리(35)는 '주2일족'이다. 회사에서는 물론 그가 5일 내내 열심히 일하는 줄 안다. 이 대리의 비결은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간 가능한 한 '빡세게' 일하고 나머지 사흘 동안 그 결과를 조금씩 나눠서 보고하는 것이다. 이 대리는 "일을 안 한 것도 아니고,남들이 5일간 슬렁슬렁 하는 일을 이틀간 집중해서 한 뒤 적절히 배분하는 것뿐"이라며 "남은 사흘 동안에는 적당히 여자친구도 만나고 투잡으로 친구와 함께 운영하는 와인바도 돌본다"고 했다.

이고운/이관우/김동윤/이상은/강유현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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