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미니 헌법으로 불리는 리스본 조약의 개정을 놓고 회원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EU 회원국들의 재정적자 규제안을 도입하는 데 리스본 조약 개정이 필요한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조약 개정을 강력히 요구하는 반면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개정 불가'를 주장한다. 이 때문에 자칫 유럽의 통합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獨 · 佛 "재정개혁 위해 개정 필요"

AFP통신은 25일 "리스본 조약 개정 문제는 극도로(extremely) 민감한 사항"이라며 "이 문제가 오는 28~29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U는 올해 초 그리스 재정위기 발발 이후 회원국들의 재정적자 수준을 규제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해왔다. 지난주 열린 EU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내 상설 구제금융 제도를 도입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가 3%를 넘는 재정불량 국가를 제재하는 방안을 담은 합의안을 도출했다.

EU집행위원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도출된 합의안을 이행하는 데 기존 리스본 조약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리스본 조약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에 회원국들의 재정적자 기준(GDP 대비 3% 이하)과 정부 부채 가이드라인(60% 이하)이 이미 규정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는 강력한 제재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조약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조약만으로는 재정불량 국가들을 제재하는 데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독일과 프랑스가 주장하는 조약 개정이 받아들여진다면 EU가 가장 우려하는,국민투표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려면 EU 27개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만 한다. 회원국 중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등 일부 국가들은 국민투표로 조약 개정에 대한 찬반을 결정해야 하는데,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개정땐 '하나의 유럽' 멀어져

이미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EU 헌법이 부결된 바 있다. EU 헌법을 대체하기 위해 제정된 리스본 조약도 4년간의 진통 끝에 지난해 12월에야 간신히 발효됐다. 특히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부결이 확실시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일랜드가 EU의 재정적자 목표치를 맞추기 힘든 상황에서 자국을 제재하는 내용이 담긴 조약 개정에 찬성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리스본 조약을 개정하게 되면 '하나의 유럽'의 꿈은 또다시 진통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U 집행부도 "독일과 프랑스가 내린 (조약 개정) 결정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EU 내 독일과 프랑스의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도 조약 개정을 꼬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독일과 프랑스가 자신들의 주장을 강행하기 위해 담합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도 독일과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조약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