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1조원을 들여 글로벌 플랫폼 경쟁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플랫폼 경쟁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정보기술(IT) 3인방이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으론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스마트TV 등 디바이스 기반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위치기반서비스(LBS),콘텐츠 유통,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서비스 기반의 플랫폼을 확립할 계획이다.

플랫폼 경쟁의 시발점은 애플이다. 애플은 10년 전부터 온라인 장터와 디바이스를 결합한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음악을 사고 파는 아이튠즈와 이 음악을 즐기는 아이팟을 내놓아 단숨에 디지털 음악 시장을 장악했다. 경쟁사들이 애플 플랫폼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터치스크린 방식의 아이폰과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프로그램) 장터인 앱스토어를 내놓으면서다.

애플은 누구든지 앱을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를 개설함으로써 스마트폰시장과 통신시장의 패러다임을 단숨에 바꿔버렸다. 올해 들어서는 태블릿PC 아이패드 발매를 계기로 전자책 장터인 아이북스를 열어 플랫폼을 확장했다. 여기에 애플TV를 결합함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애플 디바이스,애플 장터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겠다는 게 애플의 복안이다.

플랫폼에 관한 한 애플의 최대 경쟁자는 구글이다. 1998년 설립된 구글은 검색엔진 하나로 세계 인터넷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주도권을 잡았다. 구글은 모바일 시대에도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드로이드라는 모바일 운영체제(OS)를 개발하고 이를 누구든지 가져다 쓸 수 있게 개방했다.

애플 아이폰에 일격을 당한 스마트폰 메이커들은 구글이 내놓은 안드로이드를 기꺼이 채택했다. HTC가 앞장섰고 모토로라 삼성전자 등이 뒤따랐다. 현재로서는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안드로이드폰은 아이폰에 대적할 유일한 대안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폰 홈스크린에 구글 검색엔진을 장착하고 구글맵스,G메일 등 자사 서비스를 탑재함으로써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해 가고 있다.

세계 1위 TV 메이커,세계 2위 휴대폰 메이커인 삼성전자로서는 판도가 바뀌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삼성은 애플이 패러다임을 바꾸자 전략을 수정했다. 윈도모바일 의존에서 벗어나 안드로이드를 채택했고 자체 모바일 OS 웨이브를 개발했다. 애플 앱스토어와 비슷한 삼성앱스토어도 개설했다.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에 맞서 갤럭시S-갤럭시탭-갤럭시플레이어 라인도 구축했다.

삼성으로서는 단숨에 애플의 10년 플랫폼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비장의 카드가 스마트TV다. 삼성은 세계 최대 TV 메이커라는 이점을 살려 스마트TV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자사 스마트TV에 TV용 앱이나 콘텐츠를 사고 파는 TV 앱스토어를 개설했다. 애플이 스마트TV에서 고전하고 구글이 소니 힘을 빌려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TV는 삼성의 강점이다.

플랫폼 경쟁에서 가장 답답한 선수는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반세기 동안 윈도 OS로 세계 PC 시장을 장악했다. 윈도는 최강의 플랫폼이었다. 이 플랫폼의 지배력을 모바일로 연장하려고 윈도모바일을 내놓았다. 그러나 아이폰이 나오면서 계획이 뒤틀리고 말았다. 윈도모바일은 아이폰 OS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안드로이드까지 나오면서 윈도모바일은 잊혀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모바일을 버리고 부랴부랴 새 모바일 OS를 개발했다. 윈도폰7이 그 결과물이다. 삼성전자 LG전자 HTC 등은 최근 유럽에서 이 모바일 OS를 탑재한 새로운 '윈도폰'을 발매했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간신히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글로벌 IT 강자들이 겨루는 플랫폼 싸움판에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사용자가 5억명이 넘는 세계 최대 SNS 사업자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웹사이트(플랫폼)를 개방함으로써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제는 트래픽에서 구글을 능가했다. 모바일 플랫폼이 약한 게 흠인데 최근에는 '페이스북폰'을 개발 중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플랫폼은 백화점이다. 종래는 장터에서 저마다 좌판을 깔아놓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팔았다. 애플이 백화점을 짓고 파트너들을 입점시켜 장사하게 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애플은 매장 구축에 필요한 장비를 팔고 수수료를 챙긴다. 글로벌 강자들이 너도나도 플랫폼을 구축하면 파트너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고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플랫폼이 이길 것으로 보인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 플랫폼

플랫폼이란 말은 애매하다. 통상 전철에서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승강장을 플랫폼이라고 하는데,IT에서는 '각종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것'을 말한다.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온라인 장터를 의미할 때도 있고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의미할 때도 있다. 페이스북 같은 웹사이트도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플랫폼을 장악하는 자가 이긴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