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재정건전화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고 나섰다. 지난주 810억파운드(142조원)에 달하는 대대적인 재정긴축 계획을 발표했던 영국은 25일 2000억파운드(약 350조원)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 등이 포함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재정 긴축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날 런던에서 열린 산업연맹(CBI)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의 '뉴 이코노믹 다이내미즘'을 내놓았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부양책"

캐머런 총리가 이날 발표한 경기부양책의 핵심은 민간 분야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 경제 회복을 위해선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사업하기 좋은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번 경기부양책은 재정긴축으로 없어지는 일자리를 상쇄하기 위한 일시적인 정책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성장에 초점을 둔 지속적인(relentless) 정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기업의 성장은 오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자신감도 숨기지 않았다.

이번 경기부양책의 특징은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사업 환경을 만들고 △영국이 강점을 보이는 산업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신생 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것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도로 철도 항만 등 공공 및 민간 부문 인프라 투자를 2000억파운드까지 확대한다. 풍력 · 조력에너지 등 영국이 강점을 보이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에는 6000만파운드를 투자할 예정이다. 아울러 기업과 대학을 연계하는 산학 정보기술(IT) 센터 건립에 2억파운드를 투입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지원도 강화한다. 캐머런 총리는 "앞으로 중소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경기부양책 효과 논란

정부가 발표한 이번 계획에 영국 산업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CBI 관계자는 "이번 경기부양책은 영국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가 발표한 경기부양책은 내각 검토를 거쳐 몇 주 안에 세부 정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FT는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 정책이 실효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기지표가 과감한 성장 정책 추진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FT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0.4%에 그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9년 만의 최고치인 지난 2분기 1.2%에 비해 큰 폭으로 둔화된 것이다. 새뮤얼 톰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애널리스트는 "둔화된 경기지표가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영국 경제가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 수 있다"며 더블딥 가능성도 제기했다.

재정긴축안과 경기부양책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도 주목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런던정경대 교수는 정부의 과도한 공공지출 축소로 영국의 경제 회복이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3일 선데이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실업률은 높고 일자리는 없는 상황에서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이 지난 20일 제시한 긴축 중심의 경제 해법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중앙은행(BOE)이 재정긴축과는 반대로 통화확장 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센터(CEBR)의 최근 전망도 이 같은 우려에서 비롯됐다.

강경민/이관우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