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의 진로를 놓고 논쟁을 벌이면 대개는 둘로 갈라진다. 한쪽에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서비스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과학기술 등을 다루는 지식경제부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전자 쪽에 가깝고,기획재정부는 후자 쪽이다. 국가적 모델로 치면 독일 · 일본식 모델로 갈 것인가,아니면 미국 · 영국식 모델로 갈 것인가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보면 각 모델은 해당 국가의 경제적 부침과 궤를 같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확산되는 산업 간 융합흐름을 근거로 우리가 제3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제3의 경로라는 것도 실상은 이것저것 다 하자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의 진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총재 회의 합의문을 놓고 안팎에서 찬사가 들린다. 불투명해 보였던 G20 서울 정상회의 전망이 한층 밝아졌고,의장국 한국의 역할이 빛났다는 얘기다. 그 전의 G20 정상회의나 환율전쟁 같은 회의 직전 상황의 긴박성 등을 생각하면 그런 평가를 충분히 받을 만하다. 의장국으로서 한국의 '국격'은 확실히 올라간 느낌이다.

일각에서는 실행력 없는 선언,선진국과 신흥국 간 갈등 봉합 또는 휴전일 뿐이란 평가절하(?)도 있지만 우리가 여기에 개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이를 의식한 나머지 우리 정부가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국제질서에 획기적인 획을 긋는 성과내기에 강박감을 갖지나 않을지 그게 더 걱정스럽다. 의장국으로서의 '역할'과 '국격'을 떠나 여기서 더 나아갈 경우의 득실도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보다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과 '경쟁적인 통화절하 자제'가 각각 중국과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도 있지만 그 화살이 우리에게로 향하지 말란 보장도 없다. 원화가 주요 통화가 아니고 우리의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최근 한 · 일 간 환율문제가 불씨가 되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예사롭지 않다.

"경상수지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모든 정책수단을 강구한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각국이 합의할 '예시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국가별 경상수지를 평가한다"는 문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도 작지 않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비율을 예컨대 4% 정도로 하면 우리는 물론 대부분의 국가들이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는 계산이겠지만, 일단 가이드라인이 설정되면 우리로서는 수출이라는 전통적 성장모델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불균형은 환율이나 경상수지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그 뒤에는 산업구조의 불균형 문제가 있다. 우리는 수출에서 내수로,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할 준비가 얼마나 돼 있고,또 이를 통해 성장공식을 새로 쓸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경주 합의를 놓고 누구는 미국의 승리,누구는 중국의 선방이라고 하는데 G20 의장국인 우리는 '국격' 말고 ' 실리' 측면에서는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경주합의를 더 진전시키려 하기 전에 자칫하면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거나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부분은 없는지도 깊이 따져봐야 한다. 어쩌면 내년에 프랑스로 그 다음 과제를 넘기는 것도 현명한 전략일지 모른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