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기자간담회에서 "적자 상태인 지하철이 모든 노인들을 무임승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임이 분명하다. 노인 표를 잃을 것을 우려한 정부 여당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고,민주 민노 등 야당들은 때를 만난 듯 거세게 김 총리를 몰아붙였다. 급기야 총리실이 "발언의 의도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하고 대한노인회에 유감을 표명하고서야 사태가 진정됐다. 정부 또한 서둘러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폐지할 계획이 없음을 밝히는 등 진화에 바빴다.

하지만 김 총리의 발언이 비난받아야 할 내용인지는 정말 의문이다. 원론적으로 볼 때 그의 발언은 전혀 잘못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하철의 경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돈 많은 노인들까지 공짜로 태워주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그의 발언이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라기보다는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하고,정책을 합리적으로 시행해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가 그런 예로 과연 적절한 것이냐에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공공시설 이용에 대한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고,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의 대부분은 기초노령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혜택 정도야 지금껏 나라와 후대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던 데 대한 보답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복지 문제는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 문제와 직결돼 있고,자칫 정책을 잘못 시행할 경우 국가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된다. 특히 복지 혜택은 한번 주고 나면 다시 빼앗기 어렵다. 지하철 무료 이용 혜택은 그런 좋은 예다. 복지 정책도 경제력에 맞게 해야지 과도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국가 경제 위기까지 겪은 그리스나 국민연금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재정적자 삭감에 비상이 걸린 영국의 사례 등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은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미달하는 만큼 그들과 직접 비교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사태를 겪지 않기 위해선 포퓰리즘을 최대한 경계하며 정책을 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도 고령사회가 본격화하면서 복지 혜택을 대폭 확대해 나가야 할 형편이어서 더욱 그렇다.

김 총리의 발언을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가 만일 더 큰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었다면 표가 달아나는 소리는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지 정책은 물론 앞으로의 국정 운영에서 정치권 등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다. 더 이상 자리에 욕심내지 않는 총리라면 얼마든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 있는 소신과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 특히 김 총리는 사법부에 오래 몸담으면서 대법관을 역임했고,감사원장까지 거친 만큼 나라 구석구석의 잘못된 부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살려 진정 나라를 위하는 게 어떤 것인지 냉철히 판단하면서 소신 있게 국정 개혁에 임해주기 바란다.

소신이 필요한 것은 비단 총리만이 아니다. 나라 일을 맡은 공무원이라면 응당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한다.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별채용 사건이 시사하듯 잘못된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느라 할 말을 못하는 공무원들로 가득차 있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아니라 입바른 소리를 하는 공무원을 많이 볼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