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화, 개그맨 꼬리표 떼는데 6년…이젠 최고의 뮤지컬 스타로
"자신감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두려움을 버렸기 때문이죠."

배우 정성화씨(35 · 사진)는 뮤지컬 업계에서 이제 명실상부한 '톱'으로 꼽힌다. 지난 6월 초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다룬 작품 '영웅'으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더니 이달 열린 '제10회 한국뮤지컬 대상'에서도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제치고 또다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굵직한 상을 잇달아 휩쓴 것도 그렇지만 개그맨 출신이라는 '약점'을 딛고 화려하게 변신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뮤지컬 배우는 대중 공연예술의 꽃.가수를 능가하는 노래 실력과 춤,외모와 연기력,객석을 휘어잡는 장악력까지 모든 요소가 뛰어나야만 비로소 스타 대접을 받는다.

정씨는 인생 항로를 바꿔 성공한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열정을 쏟을 만한 분야를 발견하고 정신없이 파고든 점,자신의 경력을 장점으로 활용한 점,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가짐,폭넓은 인간관계 등이다.

19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정씨는 2000년대 중반까지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하거나 몇몇 뮤지컬 공연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그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은 남경주씨 등과 함께 공연했던 '아이 러브 유'(2004).

"첫 공연이 끝난 후 한번도 못 받아 본 진심어린 박수를 받고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갈 길이 이거구나' 싶었죠.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습니다. "

그러나 열정이 곧바로 모든 것을 이뤄주진 않았다. 개그맨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관객들에게 늘 선입견을 낳았다.

"2006년 뮤지컬 '컨페션'을 공연할 때였어요.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관객들이 저한테 웃음을 기대한다는 것을 알았죠.마지막에 관객을 울리는 대사가 나오는데 오히려 스멀스멀 웃으시더라고요. 또 두 세 명의 배우가 같은 역할에 캐스팅되면 '그래도 뮤지컬 배우가 나오는 공연을 봐야지'라며 예약을 안 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

정씨는 꾸준히 뮤지컬 무대를 찾아다녔다. 서울예술대학 연극학과에서 기초를 쌓은 연기력,중학교 시절부터 빼놓지 않고 참여해 온 성가대와 중창단 경험,개그맨과 라디오 DJ 등을 통해 얻은 순발력과 적응력이 밑천이 됐다. "뮤지컬은 무엇보다 노래가 중요한데 성가대 활동이랑 닮은 점이 많아요. 마음 속에 뭘 담아놓고 노래하죠.음감이나 화음도 그 때 익혔죠."

정씨는 평론가와 관객은 물론이고 뮤지컬 제작자와 동료 배우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 초연된 '영웅'에서는 쟁쟁한 뮤지컬 스타 배우와 번갈아 주연을 맡았는데도 '티켓 파워'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는 "삶이 잘 안 풀리면 그 때는 앞길이 깜깜하지만 그 모든 것이 미래의 자양분이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며 "적어도 뮤지컬에서는 제가 희망의 증거인 셈"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현재 공연 중인 '스팸어랏'과 12월 초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서 재연되는 '영웅'이 끝나면 내년 3월 말, 8년간 교제해 온 여자친구와 결혼할 예정이다. 한동안 방송 일이 끊겨 바텐더로 일하던 시절 만난 오래된 연인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