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트워크 사업자인 아카마이가 최근 발표한 '인터넷 현황 보고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요지는 이렇다. 인터넷 접속속도는 한국이 가장 빠르다. 그냥 빠른 게 아니라 2위 홍콩이나 3위 일본보다 2배나 빠르다. 인터넷 접속속도가 빠른 상위 10개 도시는 모두 한국에 있다. 한마디로 인터넷 인프라에 관한한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아카마이 보고서는 네트워크에서 실제로 측정한 수치를 비교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높다. 이런 자료에서도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았으니 기쁜 일이다. 우리가 일찌감치 세계 최고의 정보고속도로를 구축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고속도로를 깔아놓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걸핏하면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우리는 '인터넷 인프라 강국'일 뿐이다. 대기업이 만드는 반도체 휴대폰을 제외하면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소프트웨어나 서비스에서 그런 게 과연 있는가. 소프트웨어 1위 기업은 쓰러졌고 국산 오피스로 이름을 날렸던 기업은 8차례나 주인이 바뀌었다. 한때 '종주국'을 표방했던 온라인게임은 중국한테 추월당하기 일보 직전이다. 요즘 각광받는 소셜게임에서는 한참 뒤처졌다.

진정한 'IT 강국'이었다면 아이폰이 들어오자마자 혼비백산할 이유가 없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징가 포스퀘어 그룹폰 등을 따라할 필요도 없다. 현실은 반대다. 미국 IT 서비스를 베끼느라 정신이 없다. 오죽했으면 '아이폰 쇼크'란 말까지 나올까. 인터넷 접속속도만 놓고 보면 미국은 우리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어느 IT기업 대표는 공식석상에서 "반성한다"고 말했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사람마다 다른 얘기를 하지만 정부 기업 국민 어느 한 쪽만의 잘못이라고 몰아세울 일은 아니다. 기업인 한두 사람이 반성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닷컴 버블이 꺼진 이후를 뒤돌아 보면 정부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규제를 잔뜩 만들어 창업 의지를 꺾고 기업의 로비 조직만 키워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게임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오픈마켓에 대한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모바일게임이 유망산업이란 말은 미안해서 못하겠다. 국회는 3년 동안 법률개정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지금은 게임 과몰입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바람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과몰입 규제,좋다. 술 때문에 파괴된 가정도 많으니 음주도 정부 승인을 받게 하자.

정부와 국회가 아무리 똑똑해도 테크놀로지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가는 게 맞다. 해서는 안되는 것만 나열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풀어줘야 한다. 규제완화가 불안하면 처벌을 강화하면 된다. 그게 세계적인 추세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시시콜콜 간섭해서는 안된다. 디지털 음악처럼 요금을 얼마 받으라고까지 못박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업에도 잘못은 있다. 규제를 초래하는 행태를 일삼았고,로비 조직을 키웠고,서비스에 울타리를 쳤고,말로만 상생을 떠들었다. 잘못을 반성한다면 창의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 협력사와 고객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전 세계 소비자들이 한국산 디바이스,한국산 서비스,한국산 콘텐츠에 열광하는 날을 기대할 수 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