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위기가 닥치면 경영진은 구조조정을 우선 떠올린다. 하지만 '인재경영의 대가'로 불리는 제프리 페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의 주장은 달랐다. 페퍼 교수는 '내일의 직장에는 어제의 인재가 필요없다'는 주제의 세션에서 "회사가 인재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직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직장인이 직장에 대한 불신으로 경제위기가 끝나면 이직하겠다고 답했다"며 "해고의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직원의 충성도를 높여라

페퍼 교수는 현재 경제 상황을 '절망과 희망의 콤비네이션'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등에서 계속 정리해고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지만 직장을 따뜻하게 할 방법이 충분히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직장인의 절망이 회사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강조했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19%는 회사 이익을 줄이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무려 71%는 '시계만 본다'고 답했다. 컨설팅 회사인 머서가 영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오직 40%만이 '상사에게 복종한다'고 응답했다. 2007년 HR 컨설팅기업 타워스 왓슨의 조사에 따르면 9만명의 회사원 중 21%만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용 불안정성 때문이라고 페퍼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미국 100대 기업 중 17개 기업만이 해고를 안 했다"며 "미국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내는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는 9 · 11테러 이후에도 한 사람의 직원도 자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고를 하면 '우리는 당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페퍼 교수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이 사람들을 해고하는 데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며 "이들은 평소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고로 기업의 비용이 실제로 줄지 않았고 단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내 분권화 필요

페퍼 교수는 기업 내 '분권화(decentralization)'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기업 내 일처리 과정과 정보의 중앙화가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그는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모두 세계적인 선수가 모여 있지만 바르셀로나가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구단이 선수들 간 차이를 두지 않고 함께 전략을 짜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분권화는 직원들의 '주인의식'도 높인다. 정보가 공유되고 서로 네트워크가 이뤄져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합심해 문제를 해결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사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생겨난다. 조금 괴상한 아이디어라고 여겨지는 아이템,예를 들어 '누가 작은 화면으로 TV를 볼까'라는 이상한 생각은 결국 히트를 쳤다.

◆일자리 창출 적극 나서야

페퍼 교수는 한국 경제 문제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이 국정 최고 목표'라는 발언에 대해 그는 "정부가 기업의 일자리 문제에 충분히 관여할 수 있다"며 "환율도 정부가 개입하는 상황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정년을 늘리고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거나 희망퇴직을 받는 등 상반된 고용정책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직원에게 각 제도의 필요성을 설명해 그들이 충분히 알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하고 어떤 제도가 비용을 아낄 것인지 철저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그룹의 임원 대상 스트레스 테스트 의무화에 대해서는 인재 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김주완/강유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