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이 경쟁력 있으니 배워야 한다고? 깜짝 놀라 자세히 기사를 보니,미국 대통령이 하신 말씀이란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 버린 우리 교육의 강점이 어디에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부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 뿐,오히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느 미국 선생님에 대한 기억만 다시 살아남으니 이를 어쩌랴.

난생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게 꼭 25년 전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검찰 업무에서 벗어나 로스쿨 학생이 된다는 꿈에 부푼 것도 잠시,가을학기 시작 전에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교포 한 분의 도움을 받아 학교가 있는 워싱턴DC에서 가까운 조그마한 도시에 아파트를 빌려 살림살이 준비,중고차 구입,운전면허 취득까지 마친 다음,일곱 살 딸아이를 집 부근 공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이를 일단 입학시켜 놓고 보니,알파벳 정도밖에 몰라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동급생들과는 제대로 어울릴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두 달 지나고 보니 그건 그야말로 쓸데없는 기우였다. 스무 명 남짓한 학생 중 아시아계 서너 명을 따로 모아 해주는 방과후 영어교습 덕분에 금새 학교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미국 교육의 저력이 느껴졌다. 1년의 연수가 끝나갈 즈음에는 그동안 쌓아 온 영어실력을 계속 살릴 수 없는 게 무척 아깝게 생각될 정도였다. 귀국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러 학교를 방문했다. 40대 중반의 여자 선생님은 머릿속에 그리던 대로 교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자상하게도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가 영어를 학교에서 계속 배우게 되느냐고 묻기에,5년 후 중학교에 들어가야 제대로 배우게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책 몇 권을 꺼내주시면서 귀국하면 집에서라도 레벨에 맞춰 읽히라고 충고해 주시는 게 아닌가.

코끝이 찡한 감동을 억누르며 교실 밖으로 나서는데,이번에는 데리고 간 다섯 살짜리 아들에게 말을 거시며 '네 이름이 ◆◆ 맞지,네 생일이 ◆월◆일 맞지'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아니 선생님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리 아이 생일까지 어떻게 알고 계시느냐고 되물었더니,딸아이가 써 온 일기장을 읽어보고 알게 됐노라고 대답하셨다. 순간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선생님의 이상적인 모델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며….

당시 겪은 이 일이 물론 미국 교육현장의 전부는 아니지만,그런 선생님들이 있어 오늘날 미국의 국력이 나왔다고 믿고 싶다. 교실에서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잠자는 학생을 남의 일 보듯이 방치하는 우리네 선생님들에게서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문영호 <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 yhm@bk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