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자꾸만 귓등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름 아니라 '철 · 밥 · 통'. 이게 웬 소린가. 게으르고 무능하지만 봉급은 꼬박꼬박 챙겨가는 공무원들을 비난하는 소리였는데,무슨 메아리도 아니고 이젠 대학교수를 향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내가 철밥통인가.

새삼 스스로를 돌아본다. 전임강사부터 교수 생활 26년째,원칙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애를 많이 썼지만 꾀를 부린 적도 있었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본 일도 없지 않았으며 게으름을 떤 적은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 왔고 본업에 충실하려고 애썼는데 철밥통이라니,왠지 좀 억울하다.

아,다 그런 게 아니라 일부 소수의 교수들 얘기일 뿐 교수 전체를 싸잡아 하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약간 위안이 되는가 싶지만,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운 것은 마찬가지다. 은근히 고소하다는 눈치 같기도 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철밥통깨기를 갓 길에 차를 세워놓고서라도 꼭 지켜보고 가겠다는 분위기다. 묵묵히 본분을 다해 온 '대다수 교수님들'을 능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하지만 일부 몰지각하고 철면피한 소수의 철밥통들을 잡으려고 너무 크고 넓은 그물을 던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발표한 단과대 학장 직선제 폐지,성과연봉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국립대 선진화 방안이 지금 대학,특히 국립대학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교과부가 입법예고한 대로 성과급과 연봉제를 결합시켜 획일적인 범주와 기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누적 반영하는 방식은 그 이론적 · 정책적 근거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도 고작해야 단기적이고 고만고만한 수준의 연구를 양산할 뿐 창조적인 연구활동은 오히려 위축시킬 위험성이 크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경영뿐만 아니라 행정과 정책도 모름지기 증거에 기반(evidence-based)을 둬야 한다. 어떤 정책을 도입하려면 그 목표와 이유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 목표를 언제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근거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장관의 '공무원보수규정' 개정안 입법예고에는 '성과관리 강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를 위해 현행 연공서열에 따라 호봉제를 적용하고 있는 국립대학 교원에 대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자 함'이라고만 돼 있다.

교과부는 교원의 자발적 동기 유발을 통한 교육 · 연구역량 향상을 촉진하고 국립대학 교원사회에 발전적인 경쟁 풍토를 조성하며 국립대학의 경쟁력과 책무성 강화 및 교육서비스의 질 제고를 기대효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국립대학 교수에 대한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행안부나 교과부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거창한,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당위론적 목표가 아니라 교수들에게 그런 방식의 성과급적 연봉제를 적용할 경우 성과를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최소한의 실증적인 근거가 있는가.

인지적 평가이론 등에 따르면,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평가와 이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부과할 경우 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고,연구개발직에 대해 외재적 보상을 동기 유발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대학에서 같은 학과 내 교수 간 보상 격차가 클수록,교수들의 만족도와 생산성이 줄고,같은 과 교수 간의 공동연구가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금전적 인센티브는 정책수단으로 한계가 있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남용하면 오히려 부작용과 폐단을 초래할 수 있다. 연구 조교와 공간의 배정 같은 비금전적 유인들이 교수들의 성과를 높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가 철밥통깨기를 성원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교수사회의 문제제기를 철밥통의 불만으로 몰아간다면 소통의 정치도 공정사회도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