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열쇠는 외국인의 프로그램 비차익매수가 쥐고 있습니다. 최근 소강상태를 보이는 프로그램 비차익매수의 회복 여부에 따라 코스피지수의 방향이 결정될 것 입니다. "

심상범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대안투자(AI) 파트장(41 · 사진)은 1일 "작년 5월 하순 이후 코스피지수 상승을 주도한 외국인의 프로그램 비차익매수가 최근 한 달간 약해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심 파트장은 1996년 대우경제연구소 시절부터 15년간 선물옵션 시장을 분석해온 1세대 파생시장 애널리스트다. 2006년 상반기부터 총 여섯 차례 한경베스트애널리스트 선물옵션 분야 1위 에 올랐다.

심 파트장은 선물시장 전문가의 시각으로 주식시장(현물시장)을 분석해 왔다. 코스피지수가 올 들어 1900선을 돌파할 수 있었던 데는 외국인의 힘이 컸지만,외국인의 주식 매수를 세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외국인 매수를 △일부 주식만 선별적으로 사들이는 개별주식 순매수 △한국 증시 비중 확대를 위해 주식을 대규모로 사는 프로그램 비차익순매수 △현 · 선물 간 차익거래를 위해 주식을 사는 프로그램 차익순매수로 구분했다.

심 파트장은 "코스피지수가 상승 랠리를 시작한 지난 5월26일 이후 외국인의 유가증권시장 순매수 약 11조원 중 8조원은 프로그램 비차익순매수이고,2조7000억원가량은 프로그램 차익순매수"라며 "코스피지수가 지난달 6일 1900선을 돌파한 이후 자꾸 되밀리는 것은 이 무렵부터 프로그램 비차익매수 강도가 약해진 것과 연관이 깊다"고 설명했다.

심 파트장의 분석에 따르면 외국인 비차익매수의 주체는 글로벌이머징마켓펀드(GEM)들이다. 최근 외국인의 비차익매수가 약해진 것은 GEM펀드들이 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라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잠시 관망하고 있거나,한국 증시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는 분석했다.

심 파트장은 "만약 전자의 경우 빅 이벤트가 증시에 우호적으로 결론이 나면 그동안 고여있던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증시가 급등세를 연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다만 잠재적인 불안 요인으로 2조7000억원에 달하는 외국인의 프로그램 차익매수 잔액을 꼽았다. 최근 들어 코스피지수가 크게 조정받았던 지난달 18일(-1.41%)과 29일(-1.31%) 모두 '외국인 선물매도→현물가격 고평가→프로그램 차익매도'라는 과정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심 파트장은 "새로운 외국인 투기세력이 진입해 선물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선물시장에서 외국인 매도 공세로 선물가격이 현물보다 저평가되고,원 · 달러 환율이 환손실이 발생하는 수준까지 급등하는 두 조건이 함께 충족되면 2조7000억원의 외국인 프로그램 매수차익 잔액이 시장에 풀려 지수는 급락할 수 있다"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글=김동윤/사진=신경훈 기자 oasis93@hankyung.com


◆ 프로그램 비차익 매수

선물과 무관하게 15개 이상의 종목을 한꺼번에 사거나 파는 바스켓 거래를 말한다. 펀드가 새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거나 주식투자 비중을 높일 때 비차익매수에 나선다. 이와는 달리 선물과 연계해 고평가된 선물을 팔고 현물(주식)을 사는 것이 차익매수거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