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롯데' 닻 올렸다] (3·끝) CEO·감사·인사담당자도 '현지 롯데인' 키운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3·끝) 철저한 현지화
中·베트남 대학생 대상 연수…젊고 공격적인 인재 육성
中·베트남 대학생 대상 연수…젊고 공격적인 인재 육성
"우리는 빠지겠습니다. 본사 방침상 파키스탄은 투자 위험지역으로 분류돼 있어서…."
롯데 계열 화학사 케이피케미칼과 함께 유화업체인 파키스탄PTA 인수를 추진했던 일본 종합상사 A사는 작년 초 돌연 투자 철회 의사를 밝혔다. 연간 50만t가량의 PTA(폴리에스터 섬유 원료)를 생산하는 파키스탄PTA는 매출 5500억원에 700억원 안팎의 이익을 내는 알짜회사였지만,대주주인 네덜란드 ICI오미크론은 주력사업이 아니란 이유로 헐값에 내놓은 상태였다.
A사가 손을 떼자 그룹 내부에서는 단독인수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신동빈 롯데 부회장의 결정은 이랬다. "시끄러운 곳은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인데 이 회사는 1000㎞나 떨어진 카라치에 있네요. 한번 도전해 봅시다. "
지난해 9월 파키스탄PTA 지분 75%를 1200만달러(135억원)에 매입한 케이피케미칼은 지난해 배당으로만 600만달러를 받았다. 올해도 비슷한 금액을 배당받을 전망이어서 1년 3개월 만에 투자비를 전액 회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1주당 0.85루피에 인수한 파키스탄PTA 주가는 현재 8~9루피로 10배가량 뛰었다.
롯데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중 아무도 진출하지 않은 파키스탄에 롯데가 뛰어들었다는 것은 과거엔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며 "보수적이던 롯데의 기업문화가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롯데가 빠른 속도로 세계화할 수 있는 원동력은 '젊어진 롯데'에 있다. 2006년 롯데 임직원들의 '초년차 승진율'은 33%였다.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으로 승진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해에 곧바로 승진하는 사람이 3명 중 1명밖에 안됐다는 얘기다. 상당수는 실력이 있어도 1~2년 전에 탈락한 선배들을 위해 '희생'해야 했고,선배나 후배나 모두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변화의 출발점은 지난해 초 발표한 '비전 2018'.2018년까지 그룹 매출 200조원을 달성하기 위해선 해외시장 개척 등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를 하루 빨리 발탁해 현장에 배치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초년차 승진율은 현재 60% 수준으로 높아졌고,5년 전만 해도 50대 중 · 후반이었던 임원 평균 연령도 현재 52세로 떨어졌다. 작년에는 30대 임원도 탄생했다.
'글로벌 롯데'란 그룹 비전이 생기면서 보수적이던 기업문화도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임병연 그룹 비전추진팀장은 "새로운 일을 벌이는 데 소극적이었던 계열사들도 비전 2018에 따른 연도별 성장 목표를 맞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국내외 인수 · 합병(M&A)과 신사업에 뛰어드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계열사 간 치열한 경쟁도 롯데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해외 점포개발팀을 운영하는 계열사는 백화점 마트 자산개발 등 3곳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이들 3개팀은 보다 좋은 부지를 먼저 확보해 그룹 최고위층에 보고하는 게 주요 임무"라며 "중국에서만 '롯데타운' 후보지를 놓고 동시에 6~7곳에서 협상 중"이라고 전했다.
롯데는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글로벌 롯데'를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윤종민 그룹 인사팀장은 "해외 법인의 핵심 보직은 물론 최고경영자(CEO)도 현지인으로 선임한다는 게 그룹의 인사원칙"이라며 "대신 이들을 '롯데라이즈(lotterize · 롯데인이 된다는 의미)'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는 중국과 베트남의 현지 대학생을 뽑은 뒤 10개월 동안 한국에서 연수를 시키며 자연스럽게 롯데인으로 만들고 있다. 현지인으로 구성된 인사담당자들이 롯데의 인재상에 맞는 현지인을 자기 손으로 뽑을 수 있도록 채용 매뉴얼도 만들어 줬다. 한국인 직원이 감사활동을 벌이면 현지 채용인들이 기분 나빠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현지인 감사 인력도 육성하고 있다.
오상헌/베이징(중국)=송태형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