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탈냉전기 냉전의 섬'으로 불린다. '탈냉전'은 세계화,지구촌,협력이란 용어와 연결되고 '냉전'은 차별화,국민국가,갈등이라는 용어와 맥을 같이한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 상황에는 중첩된 두 가지 이미지가 공존한다.

냉전적 이념 갈등이 사라진 동북아에서 평화의 무드가 조성돼 왔으나 최근 영토,역사인식,환율 등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 구조는 동북아 정세를 어둡게 예견하게 하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의 활로를 고민하게 한다. 최근 중국의 차기 지도자 시진핑의 6 · 25전쟁 망발로 어수선한 가운데 이번 달 있을 오바마 대통령 등 미국 지도부의 잇단 아시아 순방 계획에 중국이 반발하는 등 동북아 정세는 요동칠 가능성이 잠복해 있다.

21세기를 맞아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세계 지도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자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20세기 잔재 청산이란 미명 아래 영토 회복을 추진하고,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중국은 과거 비동맹 세력의 한 축으로서 미국을 견제하는 소련 다음의 군사 강국 이미지를 벗어나,새로운 경제대국이자 미국에 필적할 만한 양대 강국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북아에서는 일본의 영향력을 뛰어넘으려 하고 세계적으로는 미국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국가 목표는 동북아에서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이를 중재하거나 피해야 할 입장에 있다. 다양한 갈등 요인 중 영토분쟁은 동북아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 간의 북방열도 문제,한국과 일본 간의 독도 문제,중국과 일본 간의 남방열도 문제 등은 감춰진 자원 분쟁과 연결돼 그 해결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탈냉전기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동북아의 경제적 국경이 약화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정치적 국경은 변함없이 존재함을 인식할 수 있다. 오히려 역사 인식차로 인해 영토에 기초한 정치적 국경 분쟁은 고조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국경 속에 '보이는' 국경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게 동북아 정세의 현 상황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해묵은 '균형(balancing)이냐 편승(bandwagoning)이냐' 하는 안보 논쟁을 하기보다는 우선 통일을 위해 가장 적합한 구도가 무엇인가 하는 통일 논의를 통해 통일에 적합한 동북아 안보 환경을 조성해나가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중 · 일 간의 갈등 상황은 통일 한국의 당위성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사례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구조가 아니라 '고래 싸움에 새우가 춤추기 좋은' 구조로 동북아 정세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중 · 일 양국의 갈등 구도를 중재하고 완화하는 데 한국의 가교적 역할이 중요함을 양국에 인식시켜야 한다. 나아가 양국이 완충지대로서 한반도를 인식하도록 해 통일 한국의 지지 세력으로 양국의 입장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남북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 북한의 급변 사태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로드맵이 가시화돼야 하는 것이다.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통일 비용 논의에 따른 통일부의 정책적 대응은 시기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한반도는 힘의 논리가 살아있는 곳이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국경이 사라져 간다는 '보이지 않는 국경' 논의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엄연한 '보이는 국경'을 주시하고 미래 통일한국의 설계도를 준비해야 할 때다.

이상환 < 한국외대 교수·국제정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