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한 뒤 10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빼돌리고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익을 챙긴 '기업사냥꾼'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부장판사 조한창)는 사기,횡령 ·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성훈 전 이노버티브 홀딩스 대표(43)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주가 조작과 횡령으로 주주와 일반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힌 삐뚤어진 기업사냥꾼에게 법원이 양형기준상 높은 형량을 적용한 사례다.

◆'M&A 귀재' 알고 보니 기업사냥꾼

검찰에 적발되기 전까지 박씨는 코스닥에서 '인수 · 합병(M&A)의 귀재'로 이름을 날렸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박씨가 투자하면 무조건 믿고 따라가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재판을 통해 드러난 그의 실상은 '범죄 종합세트'였다. 사기와 횡령 · 배임을 비롯해 주식 시세조종,변칙 M&A,차명 유상증자 등 M&A 과정에서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경제범죄가 동원됐다.

박씨는 사채업자 등에게 돈을 빌려 사실상 돈 한 푼 없이 회사를 인수한 뒤 그 회사 자금을 빼돌려 인수대금을 갚았고,경영이 어려우면 또 다른 회사를 인수했다. 그는 2008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액티투오,에스씨디 등 코스닥 상장사 4곳과 엠오비,대영강재 등 비상장사 2곳을 차례로 인수한 뒤 이들 회사의 자금 1132억여원을 자신이 세운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에 빌려주는 형식으로 빼돌렸다.

박씨는 또 자금이 모자라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차명으로 주식을 인수하고 '검은머리 외국인'까지 동원해 투자자들을 속였다. 박씨에게 속아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돈은 고스란히 박씨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주가 조작과 개미들의 눈물

새로운 사냥감을 낚아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사채업자 등에게 담보로 맡긴 주식 가격이 떨어지지 않게 해야 했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대적인 주가 조작이 이어졌다. 게다가 그는 주가 조작 과정에서 자신이 차명으로 사들인 주식을 팔아 35억원의 부당이익을 얻기도 했다

소규모 개인 투자자들은 박씨 일당의 주가 조작에 속절없이 휘둘렸다. 그의 화려한 범죄행각이 남긴 것은 코스닥 개미들의 눈물과 코스닥을 향한 투자자들의 차가운 시선뿐이다. 횡령사건에 휘말린 통신장비 제조업체 액티투오의 주가는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며 결국 지난 7월 상장폐지됐다. 박씨가 인수했던 나머지 상장 기업들도 대부분 거래 정지상태다. 또 이들 기업의 외부감사를 맡아 '적정' 의견을 통보했던 회계법인도 곤욕을 치렀다.

재판부는 죄질이 나쁜 점을 들어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회사의 자산을 사유물처럼 사용해 자기자본의 두 배가 넘는 주식을 취득하는 도박성 거래를 했다"며 "이는 결국 주식 시세조종과 변칙 유상증자 등 일련의 불법행위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씨는 불법행위를 저질러 피해 회사 및 주주들에게 심각한 손해를 가하고 다수의 선량한 기업들 및 일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야기해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주식 시세조종 행위는 자본시장의 질서를 교란해 국가 경제에 피해를 야기하는 중대 범죄"라며 주가 조작에만 가담한 사채업자와 개인투자자인 오모,김모씨 등에게도 모두 징역 1년~1년6개월과 집행유예 등을 선고했다. 그 밖에 범죄에 가담한 기업 임직원 등 9명에게도 각각 징역형과 벌금형을 내렸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