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열도(일본의 홋카이도 북쪽 4개섬)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이 강경대응에 나섰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쿠릴열도를 방문하자 항의 표시로 하루 만에 모스크바 주재 일본 대사를 일시적으로 소환키로 했다.

일본 정부가 대사 소환에 나선 것은 중국에 이어 러시아와 빚어지는 영토분쟁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일본 내 비판 여론 때문으로 풀이된다. 러 · 일 양국은 13일부터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APEC회의 때 정상회담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민주당 정부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러시아와는 쿠릴열도를 놓고 동시에 벌이는 영토 분쟁이 조기에 매듭지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대국으로부터 영토 위협을 받고 있는 일본이 두 나라와 외교적 파국을 피하면서 영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된다.

홋카이도 북서쪽의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등 4개 섬을 일컫는 쿠릴열도는 2차대전 종전 이후 전승국인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적으로 자국 영토였다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인 1956년 10월 일본과 국교 회복 공동선언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4개 섬 가운데 하보마이와 시코탄 등 2개 섬을 일본에 인도하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쿠릴열도 방문은 일본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쿠릴열도는 일본과의 영토 분쟁 지역이란 점에서 옛 소련을 포함해 러시아 역대 국가원수들이 방문을 자제해왔다.

일본 정부가 주러시아 대사 소환이라는 강공책을 꺼내든 것은 영토 문제에서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센카쿠열도로 분쟁을 빚고 있는 중국에 대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영토 문제에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며 들끓고 있는 일본 내 여론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 언론들은 중국의 센카쿠열도 공세에 이어 러시아 대통령의 쿠릴열도 방문으로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이 위기에 처한 것은 민주당 정권이 좌표 없는 외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민주당 정권 출범 초기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미 · 일 동맹이 약화하면서 외교 · 안보에 약점을 보였고,중국과 러시아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는 시각이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러시아 대통령이 쿠나시르 방문을 강행한 것은 지금까지 양국의 교섭 성과를 무력화시킨 난폭한 행위"라고 비판하면서도 "중국과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는 러시아가 센카쿠 영유권 문제에서 우왕좌왕하는 일본 외교의 '바닥'을 읽고 흔들기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사설에서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후텐마 미군기지 문제로 미 · 일 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며 "그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 공세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사설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은 후텐마 문제로 미 · 일 관계의 정체를 불렀고,간 나오토 정권은 센카쿠에서의 선박 충돌 사건 이후 중국의 외교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권 교체 후 총리가 러시아를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는 등 대러시아 외교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이번 사태를 부른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