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25) 안영, 모욕을 촌철살인 유머로 받아친 춘추시대 名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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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재상 자리를 두고 성공한 2인자라고 한다. 2인자는 진퇴를 잘 알아야 하고,영예를 타인에게 돌릴 줄 알아야 하며,1인자와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냉정한 현실을 잘 포장해 보고하는 말의 연금술도 습득해야 하며,철저한 자기관리 또한 필수적이다.
《사기》의 '관안열전'에 소개된 안영은 겸허한 재상의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흠은 키가 작다. 5척 단구의 왜소한 그가 제(齊)나라의 평범한 군주들인 영공(靈公)과 장공(莊公),경공(景公) 3대에 걸쳐 40여년간 2인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원천은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었다. 그는 30년간 한 벌의 옷으로 버티고,첩에게도 화려한 비단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밥상에도 고기 반찬을 두지 못하게 할 정도로 청빈했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그가 거의 반세기 동안 재상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외교가로서의 자질이 뛰어났다. 풍자와 유머감각도 돋보였다. 그의 외교적 수완은 어떤 나라를 방문하든 간에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그는 늘 당당한 교섭력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화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일단 대화의 장에 나가면 적절한 수위 조절을 하면서 교섭을 원만히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안영이 남방의 강국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당시 초나라 영왕(靈王)은 안영의 방문 소식을 듣고 그를 시험해 보기로 했는데,그 핵심은 왜소한 키의 안영이 제후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니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제나라에도 치욕을 안겨줘 초나라의 위엄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안영을 놀려주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안영이 초나라 도성에 도착했는데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안영이 문지기를 불러 열라고 하자 이미 명령을 받은 그 문지기는 안영을 성문 옆 작은 문으로 안내하고는 "재상께서는 이 개구멍으로 들어가십시오,이 정도 구멍이면 출입하기에는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큰 성문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안영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문은 개가 드나드는 문이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오.개 나라에 사신으로 오는 사람은 개가 다니는 문으로 드나들어야 하고,사람 나라에 사신으로 온 사람은 사람이 다니는 문으로 출입해야 하오.과연 내가 사람 나라에 왔는지 개 나라에 왔는지 알지 못하겠군요. 설마 초나라가 개 나라는 아니겠지요. "
초 영왕은 이 말을 전해듣고 얼굴이 화끈거려 성문을 열어주도록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초 영왕은 안영을 대면한 자리에서 "제나라에는 그리도 인재가 없는가. 어째서 당신 같이 키 작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소"라며 인신공격을 했다. 그러자 안영은 태연한 말투로 대답했다. "대왕,저희 나라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규칙은 현명한 나라에는 현명한 자를 파견하고,대국에는 키 큰 사람을 파견하고,소국에는 키 작은 사람을 파견합니다. 아쉽게도 저는 무능하고 현명하지도 못하기에 초나라로 파견될 수밖에 없었으니 대왕께서는 이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영왕은 그의 의연함에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강국 초나라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듯 당당함과 의연한 태도,임기응변의 현실감각을 적재적소에서 발휘해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고 자국 제나라의 국익에 큰 도움을 주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무성하다. 의장국으로서 갖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각국 사이에 미묘하게 얽혀 있는 이해의 실타래를 풀어 타협과 공존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안영 같은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사기》의 '관안열전'에 소개된 안영은 겸허한 재상의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흠은 키가 작다. 5척 단구의 왜소한 그가 제(齊)나라의 평범한 군주들인 영공(靈公)과 장공(莊公),경공(景公) 3대에 걸쳐 40여년간 2인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원천은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었다. 그는 30년간 한 벌의 옷으로 버티고,첩에게도 화려한 비단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밥상에도 고기 반찬을 두지 못하게 할 정도로 청빈했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그가 거의 반세기 동안 재상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외교가로서의 자질이 뛰어났다. 풍자와 유머감각도 돋보였다. 그의 외교적 수완은 어떤 나라를 방문하든 간에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그는 늘 당당한 교섭력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화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일단 대화의 장에 나가면 적절한 수위 조절을 하면서 교섭을 원만히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안영이 남방의 강국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당시 초나라 영왕(靈王)은 안영의 방문 소식을 듣고 그를 시험해 보기로 했는데,그 핵심은 왜소한 키의 안영이 제후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니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제나라에도 치욕을 안겨줘 초나라의 위엄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안영을 놀려주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안영이 초나라 도성에 도착했는데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안영이 문지기를 불러 열라고 하자 이미 명령을 받은 그 문지기는 안영을 성문 옆 작은 문으로 안내하고는 "재상께서는 이 개구멍으로 들어가십시오,이 정도 구멍이면 출입하기에는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큰 성문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안영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문은 개가 드나드는 문이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오.개 나라에 사신으로 오는 사람은 개가 다니는 문으로 드나들어야 하고,사람 나라에 사신으로 온 사람은 사람이 다니는 문으로 출입해야 하오.과연 내가 사람 나라에 왔는지 개 나라에 왔는지 알지 못하겠군요. 설마 초나라가 개 나라는 아니겠지요. "
초 영왕은 이 말을 전해듣고 얼굴이 화끈거려 성문을 열어주도록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초 영왕은 안영을 대면한 자리에서 "제나라에는 그리도 인재가 없는가. 어째서 당신 같이 키 작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소"라며 인신공격을 했다. 그러자 안영은 태연한 말투로 대답했다. "대왕,저희 나라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규칙은 현명한 나라에는 현명한 자를 파견하고,대국에는 키 큰 사람을 파견하고,소국에는 키 작은 사람을 파견합니다. 아쉽게도 저는 무능하고 현명하지도 못하기에 초나라로 파견될 수밖에 없었으니 대왕께서는 이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영왕은 그의 의연함에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강국 초나라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듯 당당함과 의연한 태도,임기응변의 현실감각을 적재적소에서 발휘해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고 자국 제나라의 국익에 큰 도움을 주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무성하다. 의장국으로서 갖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각국 사이에 미묘하게 얽혀 있는 이해의 실타래를 풀어 타협과 공존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안영 같은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