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조가 간웅이라고? 그는 문무 겸비한 지략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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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평전 | 장쭤야오 지음 |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808쪽 | 3만5000원
"조조는 대단한 사람이며,적어도 영웅이다. 내가 비록 조조와 한패는 아니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를 매우 존경한다. "
중국 현대사상의 거장 루쉰은 조조를 영웅이라고 칭하면서 고전소설 《삼국연의》에서 조조를 관찰하는 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조는 대범하나 소탈하고,속이 깊으면서 호탕했으며,기민하면서도 상냥하고,교활하며 냉혹한,다면적인 개성의 소유자다.
당시 삼국시대는 전쟁이 일상사였고,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상황이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간계(奸計)를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체면을 낮추는 일도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했다. 적에게는 '교활하고 간사한 것'이지만 조조 측으로선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이 많은 것'이다.
《조조평전》은 《한서》 《후한서》 《삼국지》 《자치통감》 등 정통 역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 조조의 온전한 면모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했다. 조조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삶을 개관하고,파란만장한 시대의 역정에서 그가 남긴 공과를 균형있게 기술한다. 조조에 대한 역대 평가를 덧붙임으로써 1800여년 동안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를 대패시킨 후 원소의 대규모 물자 · 보물 · 도서가 모두 조조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중에는 자기 측의 몇몇 사람들이 원소에게 몰래 보낸 서신들이 포함돼 있었다. 조조는 두말하지 않고 그 서신들을 불태우도록 명령했다. "원소가 강성할 때에는 나도 몸을 보증하기 어려웠는데 여러분은 오죽했겠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었던 신하들은 물론 조조와 관계없는 사람들도 조조의 관대한 도량과 역지사지(易地思之)에 감동했다.
조조는 군사전략가,정치가일 뿐 아니라 학문을 애호하고 문학에도 뛰어났다. 그는 사가와 표장(表章),교령(敎令) 등 산문을 포함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중국문학사에서도 그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공인받는 문학가다.
왕침은 《위서(魏書)》에서 조조의 문무(文武) 겸비를 높이 평가했다. "조조는 대업을 이루면서 문과 무를 두루 사용했다. 30여년 동안 군사를 통솔하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낮에는 군사전략을 강구하고,밤에는 유교 경전을 읽으며 사색에 잠겼다. " 북송의 대문호 소동파는 '적벽부'에서 조조가 "전장을 누비면서도 시를 노래했다"고 묘사한다.
"늙은 천리마 말구유에 머리를 숙이고 있어도 마음은 천리 밖에 있고,열사는 말년에도 장대한 포부를 그치지 않는다. " 중국의 역사학자 이중톈은 조조의 시 '귀수수(龜雖壽)'를 인용하면서 "왕후장상에 어찌 종자가 따로 있겠는가?"라고 한 진승이나 "대장부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 유방에 비해 조조가 더 높은 격조와 깊이가 있다고 상찬한다.
조조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조다. 기업으로 치면 창업자에 해당한다. 비즈니스 세계를 소리 없는 전쟁이라고 말한다면 전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해야 한다. 800쪽이 넘는 이 책에는 전쟁 상황에 처한 경영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실전의 지혜가 가득하다.
강경태 < 한국CEO연구소장 >
중국 현대사상의 거장 루쉰은 조조를 영웅이라고 칭하면서 고전소설 《삼국연의》에서 조조를 관찰하는 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조는 대범하나 소탈하고,속이 깊으면서 호탕했으며,기민하면서도 상냥하고,교활하며 냉혹한,다면적인 개성의 소유자다.
당시 삼국시대는 전쟁이 일상사였고,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상황이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간계(奸計)를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체면을 낮추는 일도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했다. 적에게는 '교활하고 간사한 것'이지만 조조 측으로선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이 많은 것'이다.
《조조평전》은 《한서》 《후한서》 《삼국지》 《자치통감》 등 정통 역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 조조의 온전한 면모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했다. 조조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삶을 개관하고,파란만장한 시대의 역정에서 그가 남긴 공과를 균형있게 기술한다. 조조에 대한 역대 평가를 덧붙임으로써 1800여년 동안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를 대패시킨 후 원소의 대규모 물자 · 보물 · 도서가 모두 조조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중에는 자기 측의 몇몇 사람들이 원소에게 몰래 보낸 서신들이 포함돼 있었다. 조조는 두말하지 않고 그 서신들을 불태우도록 명령했다. "원소가 강성할 때에는 나도 몸을 보증하기 어려웠는데 여러분은 오죽했겠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었던 신하들은 물론 조조와 관계없는 사람들도 조조의 관대한 도량과 역지사지(易地思之)에 감동했다.
조조는 군사전략가,정치가일 뿐 아니라 학문을 애호하고 문학에도 뛰어났다. 그는 사가와 표장(表章),교령(敎令) 등 산문을 포함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중국문학사에서도 그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공인받는 문학가다.
왕침은 《위서(魏書)》에서 조조의 문무(文武) 겸비를 높이 평가했다. "조조는 대업을 이루면서 문과 무를 두루 사용했다. 30여년 동안 군사를 통솔하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낮에는 군사전략을 강구하고,밤에는 유교 경전을 읽으며 사색에 잠겼다. " 북송의 대문호 소동파는 '적벽부'에서 조조가 "전장을 누비면서도 시를 노래했다"고 묘사한다.
"늙은 천리마 말구유에 머리를 숙이고 있어도 마음은 천리 밖에 있고,열사는 말년에도 장대한 포부를 그치지 않는다. " 중국의 역사학자 이중톈은 조조의 시 '귀수수(龜雖壽)'를 인용하면서 "왕후장상에 어찌 종자가 따로 있겠는가?"라고 한 진승이나 "대장부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 유방에 비해 조조가 더 높은 격조와 깊이가 있다고 상찬한다.
조조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조다. 기업으로 치면 창업자에 해당한다. 비즈니스 세계를 소리 없는 전쟁이라고 말한다면 전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해야 한다. 800쪽이 넘는 이 책에는 전쟁 상황에 처한 경영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실전의 지혜가 가득하다.
강경태 < 한국CEO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