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2세가 뛴다] (3) 사이몬, '전통' vs '변화' 불협화음이 어느새 하모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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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사업' 갈등 빚던 父子
기존 사업이나 잘하라던 아버지…아들 해양사업 성공에 '합격점'
플라스틱 파이프 선두주자
해양 구조물서만 올 200억 수주…합성목재 사업에도 진출 추진
기존 사업이나 잘하라던 아버지…아들 해양사업 성공에 '합격점'
플라스틱 파이프 선두주자
해양 구조물서만 올 200억 수주…합성목재 사업에도 진출 추진
맨손으로 창업해 37년간 전통 '굴뚝산업'에만 몸담아 온 아버지,한때 명품패션 사업가를 꿈꿨다가 가업승계를 준비 중인 아들.
왠지 모르게 '부조화'라는 단어를 연상케 하는 부자(父子)가 있다. 이국노 ㈜사이몬 회장(63)과 아들 이현상 전무(35)가 그 주인공.사이몬은 폴리에틸렌(PE) 수도관과 가스관,하수관,통신관,전선관 등 플라스틱 소재의 파이프 생산업체다. 창업주인 이 회장은 1973년 단돈 3만원을 들고 직원 6명과 함께 사이몬의 모태가 된 지주산업을 설립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 밑에서 4년째 가업승계 수업을 받고 있는 이 전무를 4일 서울 당산동 사이몬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처음에는 과거 방식만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 방식과 내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사업 꿈꾸던 아들,아버지 품으로
이 전무가 가업승계 과정을 밟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물론 처음부터 가업을 이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동국대 경제학과(97학번)와 영국 랭캐스터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그의 꿈은 명품패션 사업가였다.
"제조업,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인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 싫었다"는 게 이 전무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폴리니'를 수입해 파는 한국 에이전시.하지만 첫 사업부터 녹록지 않았다. 1년 반 만에 실패를 맛본 그는 '마르'라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이 역시 도중에 접었다. 연이은 실패에 낙담한 그에게 아버지 이 회장은 "(사이몬이) 굴뚝산업이지만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렇게 아버지 회사에 합류했지만 이 전무는 "처음엔 영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영업하는 법을 배우고 석 달간 현장 분위기를 익히면서 점차 사업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런 이 전무에게 이 회장도 대림산업 출신인 김길홍 부회장을 '경영 멘토'로 붙여주고 자금운영,인맥관리 등 경영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
◆전통이냐 변화냐…신 · 구세대 충돌하다
하지만 가업승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이 달랐다. 대표적인 게 인사문제.사이몬은 사내에 '블랙 스파이더'라는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다. 근무 경력이 15년 이상 된 장기근속자 중 회사에 큰 기여를 한 직원에게 평생 근무할 기회를 주고 자녀들의 입사도 보장하는 제도다. "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충성심을 갖게 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지론에서 나온 시스템이다.
이에 대해 이 전무는 "회사에 오래된 직원이 많을수록 진취적이지 못하고 과거를 답습하려는 경향만 강해진다"며 "다소 충성심이 떨어지더라도 젊은 인재를 영입해야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맞섰다.
사업에서도 부자는 맞붙었다. 지난해 말 이 전무는 이 회장에게 신사업 계획을 보고했다가 호되게 지적받았다. 플라스틱 파이프라는 기존 사업을 활용해 해양구조물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그의 구상에 이 회장은 "그게 제대로 되겠어? 다시 검토해 봐"라고 말했다. "기존 사업만 잘하면 됐지 한 번도 안 해본 분야에 굳이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전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맨손으로 회사를 키워낸 아버지를 인정하지만 (회사가 좀 더 성장하려면)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아버지를 설득했다.
◆부자(父子),공존을 통해 시너지를 내다
아버지가 일군 성과에 새로움을 더하려는 이 전무의 시도는 올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가 올 2월 사내에 만든 '해양사업부'는 영광원자력발전소를 시작으로 청평댐,의왕댐 일대의 해양(수상) 구조물 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지금까지 따낸 수주액만 200억원이 넘는다. 700억원 정도인 작년 연간 매출(관계사인 ㈜지주,유화수지 매출합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올 하반기엔 합성목재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파이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을 목재와 섞어 산책로 계단 등의 건설소재로 만드는 사업이다. 연내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시공업에도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그는 "플라스틱 파이프 사업을 주축으로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게 사이몬의 미래"라고 설명했다.
이 전무가 거둔 경영성과에 이 회장도 합격점을 주고 있다. 이 회장은 "처음에는 아들이 생각하는 경영 방식에 우려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며 "내년에 대표이사직을 아들에게 넘겨줘도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경영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이 회장과 이 전무가 닮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직원과 회사를 대하는 마음이다. 이 회장은 "기업이란 건 이윤창출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해줘야 한다"며 "다음 경영을 맡을 아들이 할 일도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무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는 "지금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자녀가 나중에 다시 입사하고 싶어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왠지 모르게 '부조화'라는 단어를 연상케 하는 부자(父子)가 있다. 이국노 ㈜사이몬 회장(63)과 아들 이현상 전무(35)가 그 주인공.사이몬은 폴리에틸렌(PE) 수도관과 가스관,하수관,통신관,전선관 등 플라스틱 소재의 파이프 생산업체다. 창업주인 이 회장은 1973년 단돈 3만원을 들고 직원 6명과 함께 사이몬의 모태가 된 지주산업을 설립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 밑에서 4년째 가업승계 수업을 받고 있는 이 전무를 4일 서울 당산동 사이몬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처음에는 과거 방식만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 방식과 내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사업 꿈꾸던 아들,아버지 품으로
이 전무가 가업승계 과정을 밟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물론 처음부터 가업을 이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동국대 경제학과(97학번)와 영국 랭캐스터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그의 꿈은 명품패션 사업가였다.
"제조업,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인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 싫었다"는 게 이 전무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폴리니'를 수입해 파는 한국 에이전시.하지만 첫 사업부터 녹록지 않았다. 1년 반 만에 실패를 맛본 그는 '마르'라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이 역시 도중에 접었다. 연이은 실패에 낙담한 그에게 아버지 이 회장은 "(사이몬이) 굴뚝산업이지만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렇게 아버지 회사에 합류했지만 이 전무는 "처음엔 영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영업하는 법을 배우고 석 달간 현장 분위기를 익히면서 점차 사업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런 이 전무에게 이 회장도 대림산업 출신인 김길홍 부회장을 '경영 멘토'로 붙여주고 자금운영,인맥관리 등 경영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
◆전통이냐 변화냐…신 · 구세대 충돌하다
하지만 가업승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이 달랐다. 대표적인 게 인사문제.사이몬은 사내에 '블랙 스파이더'라는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다. 근무 경력이 15년 이상 된 장기근속자 중 회사에 큰 기여를 한 직원에게 평생 근무할 기회를 주고 자녀들의 입사도 보장하는 제도다. "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충성심을 갖게 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지론에서 나온 시스템이다.
이에 대해 이 전무는 "회사에 오래된 직원이 많을수록 진취적이지 못하고 과거를 답습하려는 경향만 강해진다"며 "다소 충성심이 떨어지더라도 젊은 인재를 영입해야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맞섰다.
사업에서도 부자는 맞붙었다. 지난해 말 이 전무는 이 회장에게 신사업 계획을 보고했다가 호되게 지적받았다. 플라스틱 파이프라는 기존 사업을 활용해 해양구조물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그의 구상에 이 회장은 "그게 제대로 되겠어? 다시 검토해 봐"라고 말했다. "기존 사업만 잘하면 됐지 한 번도 안 해본 분야에 굳이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전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맨손으로 회사를 키워낸 아버지를 인정하지만 (회사가 좀 더 성장하려면)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아버지를 설득했다.
◆부자(父子),공존을 통해 시너지를 내다
아버지가 일군 성과에 새로움을 더하려는 이 전무의 시도는 올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가 올 2월 사내에 만든 '해양사업부'는 영광원자력발전소를 시작으로 청평댐,의왕댐 일대의 해양(수상) 구조물 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지금까지 따낸 수주액만 200억원이 넘는다. 700억원 정도인 작년 연간 매출(관계사인 ㈜지주,유화수지 매출합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올 하반기엔 합성목재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파이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을 목재와 섞어 산책로 계단 등의 건설소재로 만드는 사업이다. 연내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시공업에도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그는 "플라스틱 파이프 사업을 주축으로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게 사이몬의 미래"라고 설명했다.
이 전무가 거둔 경영성과에 이 회장도 합격점을 주고 있다. 이 회장은 "처음에는 아들이 생각하는 경영 방식에 우려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며 "내년에 대표이사직을 아들에게 넘겨줘도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경영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이 회장과 이 전무가 닮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직원과 회사를 대하는 마음이다. 이 회장은 "기업이란 건 이윤창출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해줘야 한다"며 "다음 경영을 맡을 아들이 할 일도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무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는 "지금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자녀가 나중에 다시 입사하고 싶어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