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어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장기 국채를 사는 방식으로 6000억달러를 푸는 2차 양적완화 조치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자금공급 규모가 예상됐던 수준이어서 단기적으로 우리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환율전쟁을 부추기는 도화선으로 작용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시간을 두고 달러화 가치는 약세를 띨 수밖에 없고 풀린 돈이 신흥개도국으로 흘러 들어가 자산시장에 버블(거품)을 일으킬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책 당국이 한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는 이유다. 이미 국내 증시는 외국인의 적극적인 매수에 힘입어 유동성 랠리가 나타나고 있는 양상이다.

자본유입이 늘어나면 물가상승 압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원화가치 상승 압력은 또 다른 짐이다.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이 동시에 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트릴레마(세가지 딜레마) 고충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정교한 정책 조합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그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걱정이다.

더 큰 문제는 들어온 돈이 어느 한순간에 빠져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다른 국가들은 이 같은 사태에 대해 발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 브라질이 금융거래세를 잇따라 올리고 태국이 외국인 자본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등 외국 자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는 자산 버블을 막기 위해 LTV(담보인정비율)를 강화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우리로선 명시적 자본통제나 외환시장 개입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시장상황에 맞춘 적절한 대응은 필요하다. 외국자본의 채권이자소득 비과세 철폐나 선물환 포지션 한도 추가 축소 등을 적극 논의해볼 때라는 얘기다. 또 물가 안정과 원화가치의 과도한 상승 억제라는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금리정책이 표류해서는 안된다. 금리 정책으로 두 가지 모두 달성하기는 어려운 만큼 정책목표에 우선 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선택을 해야만 시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