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초기만 해도 직원들은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굳게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제가 다가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

지난해 12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처음으로 한국경제신문과 4일 인터뷰를 가진 한상흥 녹십자생명보험 대표(54 · 사진)의 목소리는 떨렸다.

한 대표는 "2003년 대신생명을 인수할 때 1년 동안 인수단 경영기획부문장으로,다시 2008년부터 1년 동안 부사장으로 일했지만 막상 대표이사가 되니 직원은 물론 임원들도 저를 '점령군'으로 바라봤다"며 "영업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이들의 마음을 얻는 게 더 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가 되자마자 3개월 동안 제주도까지 전국 66개 지점을 모두 찾아다녔다. 직원들 사이에선 "얼마나 군기(軍氣)를 세게 잡으려고 여기까지 왔냐"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는 '영업'에 관한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직원들과 술잔을 일일이 기울이며 현지 어려움을 살폈다.

복지에도 신경 썼다. 그가 취임하기 전까지 회사에는 별다른 휴양시설이 없었다. 한 대표는 올해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 직접 휴양시설을 답사한 뒤 5억원을 들여 한화 대명 용평 엘로라도 등 4개 리조트의 회원권을 사들여 모든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지난 9월까지 전국 지점을 두 번씩,총 2000㎞를 돌아다니며 설계사를 포함해 직원 1600명을 만났다"며 "소통에 힘쓴 덕분인지 대신생명을 인수한 지 7년 만에 누적 적자를 털어냈다"고 말했다. 녹십자그룹은 2003년 부실화된 대신생명을 인수하면서 책임준비금 적립,영업권 상각 등 초기 사업비를 많이 써 450억원가량의 적자가 쌓여 있었다.

그는 "지난해 말 누적 적자가 127억원으로 줄어든 데 이어 10월에는 완전히 해소됐다"며 "올해 예상 당기순이익은 150억원 수준"이라고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생명보험사들이 초기 사업비로 인한 적자를 해소하는 데 15년 이상 걸리는 만큼 7년 만에 적자 탈출은 상당히 빠른 속도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처럼 단기간에 정상화될 수 있었던 것은 차별화된 상품과 영업 채널의 집중화,대주주의 투자 덕분이었다. 녹십자생명은 복잡한 상품 구조를 건강보험 중심으로 단순화했다. 당뇨보험 제대혈보험 등 다른 생보사에서는 취급하지 않던 상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영업도 방카슈랑스에 전념했다. 설계사나 대리점 영업에서는 업계 17위에 그쳤지만 방카슈랑스 부문에서는 3~4위 수준으로 약진했다. 대주주인 녹십자홀딩스도 인수 후 1500억원을 투자해 지분을 인수 당시 63%에서 89.3%로 끌어올렸다.

한 대표는 "앞으로 독립대리점,텔레마케팅 등으로 영업 채널 다각화에 나설 것"이라며 "녹십자그룹의 인프라를 활용해 보다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회사는 녹십자헬스케어와 함께 개발한 생활습관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건강검진 결과서를 제출하는 고객에게 보험료를 1~3% 할인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여 생명보험협회 신상품심의위원회로부터 3개월 동안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다.

"인수 당시 3600억원에 그쳤던 수입보험료(매출)가 내년에는 7400억원,2012년에는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년 하반기 중 회사 상장을 위한 주관사 선정 작업에 들어가 2012년,늦어도 2013년에는 상장을 마치겠습니다. "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