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집권당으로서 중간선거에서 78년 만에 가장 호된 수모를 당했다. 불보듯한 예상 그대로 공화당이 대승했다. 의석 전부가 걸린 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과반수 의석을 뛰어넘어 도약했고,민주당은 상원에서 간신히 과반수를 지켜냈다.

이로써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이맘 때 대통령 선거에서 대패했던 공화당은 기사회생했고,압승했던 민주당은 추락했다. 조지 W 부시 정부 때 터진 금융위기를 확장적 재정 · 금융정책을 통해 뒷수습하느라 노력해왔음을 자부하던 오바마 정부에 당혹감을 안겨 준 선거결과였다. 풀뿌리의 움직임이 반드시 이성적이기를 기대하기 어렵기는 여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다.

투표 이전에 이미 집권당 패배가 점쳐졌던 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아프가니스탄 ·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민심이반,급부상하는 중국에 밀려 위축되는 미국의 위상,개혁을 반대 · 저항하는 의료계와 금융계의 집단이기주의,비이성적인 인기영합주의와 신앙심에 가까운 미국제일주의 등으로 똘똘 뭉친 티 파티 운동 등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재정 · 금융의 물꼬를 통해 뿌려진 유동성 홍수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일자리와 줄지 않는 고질적 빈곤이 문제의 뿌리였다.

오바마의 위기대책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고,연방은행이 유동성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정부지출은 승수효과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증대를 노리는 것이나,수입을 통해 새어나가는 김빠진 구멍이 뚫린 상황에서 애써 미국이 재주 부려도 큰 돈벌이 재미는 중국,독일 등 경상수지 흑자국이 차지하는 꼴이 된다. 얄밉게도 중국은 환율조정에 인색해 사실상 수출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독일은 내수 확대는커녕 오히려 재정 긴축에 주력하고 있다. 이제는 체력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난 미국은 혼자 힘으로 세계 경제회복을 견인할 수 없고,주요2개국(G2)이라고 자칭하며 용틀임을 시작한 중국이지만 아직 글로벌 견인차로서는 동력도 달리고 신뢰성도 떨어지고 접시가게에 뛰어든 코끼리 모습이다.

사실상 제로 금리 하에서 정통적 금융정책 수단이 작동 불가능해 연방은행이 양적완화(QE)를 동원해 보지만 은행과 대기업이 유동성을 쌓아두고 대출 · 투자를 기피하는 상황이므로 유효성이 약화된다.

엊그제 6000억달러 규모의 2차 QE가 발표되었지만 경상수지 흑자국들은 과도한 달러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자본통제 또는 각종 과세조치를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중간선거 이후 오바마 정부는 개편된 의회에 발목이 잡혀 재정 운영이 파행을 빚을 것이고 오히려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축소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기왕에 풀려나간 유동성의 중장기적 인플레이션 위협을 고려하면 향후 추가적 QE는 시도하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 오바마가 심혈을 기울여 입법화했던 건강보험개혁법은 공화당이 우세한 의회에서 철폐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버틸 것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도드 · 프랭크 금융개혁법 역시 금융계 로비공세에 취약한 의회가 유명무실하게 변질시킬 공산이 크다. 이번 선거에서 이익집단들의 정치후원금이 풍성하게 나돌았다는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와 의회가 엇갈려 정책운용 마비가 엿보인다.

서울 일각에서는 공화당이 의회 주도권을 잡았다고 해서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탄력을 받아 성사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으나,노조의 입김에 민감한 민주당이 여전히 상원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어 낙관불허라고 봐야 한다.

이래저래 국제적 공조가 절실한 상황이고 보면,다음 주 서울에서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글로벌 이슈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귀중한 기회가 결실을 거두기를 바란다.

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