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중국에 또 발목이 잡히겠네요. " 아랍에미리트(UAE)가 20억달러짜리 샤 합산 화물 철도 프로젝트의 입찰 공고를 낸 지난 1일,국내 철도업계 관계자는 우려를 나타냈다. "UAE 국영 철도회사가 미국철도협회(AAR) 인증서를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권위 있는 인증서가 아니어서 우리 기업들은 딴 곳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중국 회사들은 대부분 갖고 있다는 게 문제죠."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철도 분야에서도 중국의 공세는 전방위적이다. 올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태국의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따낸 데 이어 9월에는 이란과 20억달러 규모의 서부 철도망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 최종 입찰계약을 맺었다.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에 동참한 한국 기업들은 응찰조차 못했다.

한 · 중 · 일 3국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450억달러 규모의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철 프로젝트도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KOTRA 관계자는 "재정난에 빠진 캘리포니아 주정부로선 재원 조달을 프로젝트 성공의 열쇠로 보고 있다"며 "돈 싸들고 들어오겠다는 중국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맞붙은 싸움에서 '연전연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건설한 고속철도의 길이는 6920㎞에 달한다. 한국 내 고속철 연장(694.2㎞)의 딱 10배다. 철도 인프라에 투자한 금액도 올해까지 8000억위안(약 132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험만 놓고보면 우리는 중국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노동집약적인 토목공사 중심으로 철도 인프라를 수출하려고 하면 중국과 맞붙어 이기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과 유럽의 선진업체들은 중국과 부딪치게 되는 시공 분야에서는 발을 빼는 대신 설계,조달 등 엔지니어링 분야로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다. 고부가가치 엔지니어링 분야를 개척한 기업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아 대형 건설회사들의 하청 역할에 머물고 있다.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너트 크래커'신세가 되고 있는 철도 산업의 성장 전략을 재점검할 때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